이 작품의 중심에는 한국전쟁 이후 질곡의 현대사를 버티며 살아낸 70대 할머니 '순자'가 있고, 그녀의 딸들이 이야기에 가지를 뻗어 나간다.
얼핏 등장인물만 보면 영화 <국제시장> 같은 가족 이야기처럼 보이는데, 책장을 넘길수록 그런 느낌이 사라지고 가슴이 서늘해졌다.
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등장인물 사이에 일정한 거리를 두는 연출에서 비롯된 효과다.
가족이라는 관계는 이 작품에선 역으로 '개인'에게 관계란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묻는 장치로 쓰인다.
이 같은 연출은 등장인물을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보게 함으로써,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슬픔과 고통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돌아보게 한다.
담담한 듯하면서도 묵직하고, 때로는 날카롭게 파고드는 문장이 놀라웠다.
사실 나는 이 작품을 사다 놓고 책장에 꽂아둔 뒤 꽤 오래 방치했다.
작가의 전작인 <디디의 우산>을 읽고 고개를 갸우뚱했었기 때문이다.
<디디의 우산>은 마치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처럼 소설보다는 르포를 읽는 듯한 느낌을 줬다.
그런 기억 때문에 <연년세세>에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서사나 플롯이 확실하게 드러나지 않는 소설에 거부감을 느끼는 내 취향도 뒤늦게 책장을 펼치는 데 한몫을 했다.
하지만 작가들이 좋은 소설이라고 치켜세우는 이유가 분명히 있을 거란 생각에, 뒤늦게 책장을 펼쳤다.
늦게나마 책장을 잘 펼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p.s. 고백하자면, 이 작품에서 가장 마음에 든 부분은 작가 소개다.
이름만 적혀 있고, 사진이나 그 어떤 이력의 나열도 없는 작가 소개.
멋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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