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과학 개념과 용어가 등장하지만, 법칙에 딱 들어맞는 이야기를 기대하거나 상상하면 곤란하다.
"SF는 이렇게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이나 고민을 제쳐 두고 자유롭게 쓴 이야기의 연속이다.
그래서 부담 없이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소설의 중심에는 의뢰받은 온갖 잡일을 처리하는 ‘은하행성서비스센터’의 사장 이미영과 이사 김양식이 있다.
작가는 둘이 티격태격하며 의뢰받은 일을 처리하는 과정을 따라가며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문제점을 풍자한다.
지적 생명체를 인간의 기준으로 판단해 보호하느냐 마느냐를 따지는 '인간적으로 따져보기'는 인간이 얼마나 오만한 존재인지 돌아보게 한다.
'칼리스토 법정의 역전극'은 로봇 판사를 동원한 재판에서 알고리즘을 파악해 재판 승률을 높이는 과정을 그리며 법을 미꾸라지처럼 피하는 고위층과 전관예우를 꼬집는다.
정신과 신체 중 어느 것이 인간의 본질인가를 묻는 '비행접시의 지니', 시간여행이 과연 인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묻는 '미노타우로스의 비전'과 '16년 후에서 온 시간여행자', 인공지능으로 창조하는 예술을 예술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묻는 '은하수 풍경의 효과적 공유'도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가상현실 속에서 벌어지는 정신적 폭력을 그린 '말버릇과 태도의 우아함'은 최근 화두로 떠오른 메타버스의 미래를 상상해보게 했다.
즐겁게 읽으면서도 많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좋은 작품이었다.
조금 엉뚱하지만, 이 책에서 가장 공감한 부분은 '작가의 말'이다.
'작가의 말'에는 작가가 이른바 등단 작가가 아니어서 경험한 고충과 아무도 찾아주지 않던 시절의 막막함이 솔직하게 담겨 있다.
자신이 과연 작가가 맞는지 고민하며 절필까지 생각했던 그때, 작가에게 힘이 된 건 결국 새로운 소설을 쓰는 일이었다.
작가는 그 소설을 밧줄 삼아 늪에서 한 발짝씩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결국 작가를 작가로 만드는 건 부지런히 쓰는 일뿐이다.
작가의 고백은 내게도 많은 위안이 됐다.
'독서 후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허남훈 장편소설 <우리가 거절을 거절하는 방식>(은행나무) (0) | 2021.07.26 |
---|---|
박상 장편소설 <복고풍 요리사의 서정>(작가정신) (0) | 2021.07.24 |
김홍 소설집 <우리가 당신을 찾아갈 것이다>(문학동네) (0) | 2021.07.17 |
임국영 소설집 <어크로스 더 투니버스>(자음과모음) (0) | 2021.07.16 |
장진영 소설집 <마음만 먹으면>(자음과모음) (0) | 2021.07.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