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끝까지 황당한 상황과 뻔뻔한 농담의 연속이다.
소설의 배경은 지중해 어딘가에 있는 '삼탈리아'이고, 그 나라에선 한국의 현대시가 대중문화이며 화폐처럼 쓰이기도 하는데, 주인공은 비밀 레시피를 입수하러 삼탈리아로 밀입국한 요리사로 한때 시인이 되기를 갈망했던 인물이다.
양자역학을 비롯해 다양한 과학 용어도 튀어나오지만 SF는 아니다. 작가도 그 용어를 이해하지 않고 남발한다는 게 눈에 보이니 말이다.
각주에도 진지하게 구라가 달려있어 이해를 방해한다.
이 같은 설정만 봐도 이야기가 어떤 방향으로 튈지 궁금해지지 않나?
기상천외한 모험담을 담은 이 작품에서 무언가 대단한 의미를 찾고 이해하려고 들면 곤란하다.
흉기를 든 아이들이 주인공에게 돈 대신 시를 내놓으라고 협박하는 사태 앞에서 이해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심지어 '작가의 말'에도 '구라'가 쏟아지는 걸 보고 두손 두발을 들었으니 말이다.
시시덕거리며 책을 덮었는데, 시간이 조금 흐르자 은근한 여운이 남았음을 깨달았다.
여운의 정체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피곤해 잠들었는데, 깨어나 보니 정체가 짐작됐다.
자신만의 예술을 완성하려고 노력하는 이들의 열정은 아름답다는 것.
작가는 그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기꺼이 광대 역할을 맡은 모양이다.
그런 결론에 이르니 이 소설이 기상천외한 모험담이 아니라 문학을 향한 연가이자 헌사로 느껴졌다.
소설 곳곳에 작가가 애정을 담아 인용했다는 게 보이는 최승자, 심보선, 진은영 등 여러 유명 시인의 시는 그 명백한 증거다.
이 작품의 제목에 왜 '서정'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포함돼 있는지 잠에서 깨어난 뒤에야 이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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