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평창의 산골에 자리 잡은 펜션이 작품의 배경이다.
도라지꽃이 흔하게 보일 때 이야기가 시작돼서 질 때쯤 끝나는 걸 보니, 소설 속 계절은 여름과 가을 사이로 짐작된다.
때죽나무, 꽝꽝나무, 구절초, 기생초, 파드득나물 등 다양한 식물이 작품에 소품으로 등장한다.
서정적인 이야기가 펼쳐지지 않을 수 없는 설정이다.
여기에 음식 솜씨가 좋은 펜션 주인과 애늙은이 같은 여섯 살 꼬마, 아흔을 앞둔 한국전쟁 참전 용사 출신 미국인 노인과 한국인 아내, 귀촌을 꿈꾸는 부부가 모여 얽히고설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이들은 저마다 다른 사연과 상처를 가진 착한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어깨를 보듬고 위로를 주고받는다.
마음이 따뜻해지지 않을 수가 없다.
참 다정한 작품이다.
페이지를 넘기는 내내 짙은 숲의 냄새, 소박하지만 깊은 음식 냄새가 느껴졌다.
책을 덮은 뒤, 먼 곳에서 자연을 벗 삼아 좋은 음식을 먹으며 치유라도 받은 듯 기분이 편안해졌다.
내 머릿속에 있는 구효서 작가의 이미지는 무거운 주제를 담은 난해한 이야기를 쓰는 몹시 진지한 사람이다.
작가가 이런 작품을 쓸 수도 있다는 게 놀랍고도 신선했다.
통행량이 많은 도로에서 신호등이 보이지 않을 때, 신호등 역할을 해주는 건 앞차의 후미등이다.
앞날이 불투명한 나 같은 무명 작가에게 신호등 역할을 해주는 건 선배 작가의 행보다.
60대 중반이라는 나이에도 부지런히 작품을 내고 변신을 마다하지 않는 작가의 모습은 내게 많은 용기와 자극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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