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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기

하라다 히카 소설 <낮술>(문학동네)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21. 9. 6.

 


지난 5주간 머물렀던 호텔프린스에서 돌아온 뒤 처음 펼친 책이다.
이 책을 펼친 이유는 내년에 출간할 예정인 첫 번째 에세이 때문이다.
에세이에 담을 주제가 술안주여서 자연스럽게 이 책에 마음이 끌렸다.

제목답게 주인공이 술을 마시는 시간은 낮인데, 그 이유는 주인공의 직업 때문이다.
주인공은 이른 나이에 갑작스러운 임신으로 확신이 없는 남자와 얼떨결에 결혼했다가 짧게 살고 이혼한 여자다.
경제력 부족으로 딸을 전남편에게 맡긴 주인공은 친구의 도움을 받아 호구지책으로 '지킴이'라는 일을 한다.
주인공은 야간에 고객에게서 의뢰받은 일을 하는데, 일의 종류는 말동무가 돼주는 일부터 청소까지 다양하다. 
퇴근 시간이 낮이다 보니, 하루 일과의 마지막은 귀가 전에 반주를 마시는 일이다.

책은 짧은 에피소드 16개로 구성돼 있고, 각 에피소드마다 다른 술과 안주가 등장해 입맛을 돋운다.
주인공은 처음에 자괴감과 슬픔을 달래기 위한 목적으로 낮술을 마셨지만, 다양한 고객과 만나며 현실에 지지 않을 용기를 얻는다.
작가는 변화하는 주인공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하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술과 안주를 녹인다.
한 끼를 맛있게 먹기 위한 주인공의 집착이 꽤 귀엽게 느껴진다.

이 소설 내용을 그대로 20~30분 분량의 심야 드라마 16편으로 만들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작가의 이력을 살펴보니 드라마 작가 출신이었다.
그러면 그렇지. 어쩐지 영상이 자연스럽게 눈앞에 떠오르더라.
술이 당긴다는 부작용이 있지만, 내용을 쉽게 따라갈 수 있는 따뜻한 작품이었다.
"결국 주문해버렸어. 기세 좋게 말이지"와 같은 일본 드라마 특유의 오글거리는 문장만 무시한다면 치유물로 훌륭한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