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두절미하고 경쾌하다.
그리고 재미있다.
2017년에서 2018년 사이에 벌어졌던 가상화폐 광풍이 이 작품의 배경이고, 평범한 미혼 여성 직장인 셋의 투자기가 주된 서사의 줄기다.
게다가 장류진 작가는 직장인의 애환을 무겁지 않게 풀어낸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으로 데뷔와 동시에 문단에서 스타로 떠오른 작가다.
흥미롭지 않을 수가 없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를 차지했는데, 가상화폐 광풍이 불 적에 어설프게 뛰어들었다가 몇백만 원을 날린 경험이 있어서 의도적으로 몇 달간 이 작품을 외면해왔다.
그런 경험이 있기 때문에 작품을 읽는 동안 그때 내가 느꼈던 감정이 생생하게 되살아왔다.
덕분에 작품에 빨리, 그리고 깊이 몰입할 수 있었다.
시세가 매초 급변하는데 거래는 24시간 멈추지 않고 이뤄진다.
잠들기 전에 끝을 모르고 오르던 시세가 잠에서 깨어나니 곤두박질치기 일쑤다.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다.
가상화폐로 벼락부자가 됐다는 사례가 여기저기서 들리니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수시로 호가창을 들여다보며 일희일비하다 보니 본업은 엉망이 된다.
하지만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부자가 될 기회를 만나지 못할 것 같아 불안하다.
작가는 평범한 청년이 왜 가상화폐 투자에 빠져드는지 그 심리를 실감 나게 묘사한다.
침실이 따로 있는 집에 살고 싶은 마음, 남들처럼 가정을 꾸리고 싶은 마음, 욕실의 물이 방으로 넘치지 않는 집에서 살고 싶은 마음, 곰팡이가 피지 않는 집에서 살고 싶은 마음, 유통기한이 임박한 우유 대신 유기농 목장 우유를 먹고 싶은 마음이 뭐 그리 대단한 욕심이라는 말인가.
하지만 쥐꼬리만 한 월급을 모아봤자 물가와 부동산 시세 인상을 따라갈 수 없으니 일하면 일할수록 가난해지는 게 많은 청년의 현실 아닌가.
욕심이라고 말하기에도 서글프다.
소설의 결말은 이런 서사와 어울리지 않게 해피엔딩이다.
하지만 가상화폐 투자가 주인공의 인생을 바꿔놓거나 직장을 그만둬도 될 만큼 큰돈을 벌어다 주지는 않았다.
적당히 현실감이 있는 해피엔딩이다.
혹자는 가상화폐 광풍이 대한민국 사회에 미친 영향을 작가가 지나치게 가볍게 짚은 것 아니냐고 지적할지도 모르겠다.
현실에선 가상화폐로 돈을 번 사람보다 잃은 사람이 더 많으니까.
하지만 그런 부분까지 꼭 작가가 짚을 필요가 있을까?
모든 투자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다는 걸 냉정하게 보여준 것만으로도, 가상화폐 투자의 명암을 드러내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싶은데 말이다.
딱 이 정도의 무게감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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