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만 보면 SNS 셀럽이나 모델을 다룬 이야기인가 싶다.
처음 부분은 그렇게 오해할 만하다.
그런데 페이지를 더 넘기면 갑작스러운 실종 사건에 보험 이야기가 뒤섞인 제목과 영 딴판인 블랙코미디가 펼쳐진다.
여기서 끝이냐? 마지막에는 로맨스다.
그것도 가슴 아픈 로맨스.
윤고은 작가하면 떠오르는 건 역시 재기발랄한 상상력이다.
불확실한 미래를 다루는 작가의 상상력은 종종 예언이 되기도 했다.
재난 지역 여행상품을 다룬 작품 <밤의 여행자들>이 대표적이다.
다크 투어리즘을 한발 앞서 다뤘던 이 작품은 올해 영국 추리작가협회가 주관하는 대거상을 수상하며 화제를 불러일으킨 바 있다.
<도서관 런웨이>에서 작가는 결혼 제도를 보험 상품에 포함하는 상상을 설득력 있게 풀어낸다.
작품에 등장하는 '안심결혼보험'은 결혼 준비 비용뿐만 아니라 배우자의 외도 등 결혼 생활의 안정에 필요한 시시콜콜한 부분까지 보장한다.
게다가 건강한 사람만 가입할 수 있으니, 보험에 가입했다는 사실은 곧 결혼하기에 적합한 사람이라는 보증이 된다.
보험은 미혼인 사람에게도 이득이다.
만기까지 미혼으로 남으면 원금의 130%를 환급해주니까.
이게 과연 불가능한 상상일까?
지금도 결혼 전에 상대방의 학력이나 재력, 건강 상태를 서류로 확인하는 사례가 많은데?
작품을 읽고 머지않은 미래에 정말로 결혼보험이 등장할지도 모르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작가가 여기서 이야기를 끝냈다면, 세태를 풍자하는 그저 그런 블랙코미디로 끝났을 테다.
작품의 마지막에는 사랑할 대상이 사라져 버린 후에도 사랑을 이어가려는 강한 의지를 다지는 인물이 등장한다.
작가는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사랑에는 정답이 없고 불확실성이 넘쳐날 수밖에 없다고.
사랑을 지키는 힘은 그 불확실성을 헤쳐나가고자 하는 용기에서 나오지 보험과 같은 제도에서 나오지 않는다고.
그러므로 사랑이라는 런웨이에선 눈치 보지 말고 자기만의 걸음을 걸어가야 한다고.
좋은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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