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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기

장은진 장편소설 <날씨와 사랑>(문학동네)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21. 9. 26.

 



재개발로 철거를 앞둔 오래된 장갑 공장, 그곳에서 가족의 생계를 위해 중노동에 시달리며 청춘을 보낸 여자, 오래전에 가출한 어머니를 찾아 헤매는 아버지, 소싯적에 온갖 사고를 치며 다니다가 이제는 장송곡 같은 노래나 만드는 인디 뮤지션이 된 동생...

배경과 등장인물의 삶은 하나 같이 어둡고 팍팍하지만, 작품에서 느껴지는 온도는 따뜻해 마치 동화 한 편을 읽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작품에서 나오는 온기는 퉁명스럽게 굴면서도 은근히 서로를 챙기는 등장인물 사이의 정에서 비롯된 것일 테다.
이 작품이 동화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맑은 날에도 우산을 쓰고 다니며 공장 앞 광장을 배회하는 이름 모를 남자 때문일 테고.
띠지에 '감성 연애소설'이라는 표현이 보이는데, 연애소설보다는 가족소설이나 성장소설에 더 가깝게 느껴졌다.
한 단어로 이 작품을 요약하면 '쉼표'다.

그런데 몇몇 표현이 눈에 거슬렸다.
예전 같았으면 눈에 거슬리지도 않았을 표현이다.
하지만 이제는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아서 몇 마디를 보탠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아버지는 대단히 무능력해 늘 두 딸의 구박을 받는다.
두 딸의 구박이 어떤 맥락에서 이뤄지는지 모르는 건 아니다.
이 지적은 작품 전체의 맥락에서 벗어난 지엽적인 것이다.
하지만 이런 표현을 남성 작가가 여성을 대상으로 했다면, 여성 독자가 과연 맥락에 맞는 표현이라고 너그럽게 받아들일지 궁금해진다.
아마 독자에게 닿기 전에 편집 과정에서 바로 걸러지지 않았을까.

"아버지 얼굴은 아버지의 좆처럼 풀죽어 있었다."
"나는 이제 엄마가 집을 나간 것은 아버지 좆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생활력도 경제력도 없는데 거기다 좆까지 무력해서 엄마가 떠났다. 이것저것 아무리 비교해봐도 가장 무능한 건 그러니까, 아버지의 좆인 것이다."
"아버지는 암컷도 차지 못하는 좆 작은 수사자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