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지나치기 쉽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어떤 즐거움보다 특별한 즐거움이 되는 사소함에 관한 이야기.
제목만 봐도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지 짐작할 수 있는 산문집이다.
식상한 이야기 모음이 아니냐고 지레짐작하지는 말자.
같은 식자재라도 어떻게 조리하느냐에 따라 음식의 맛도 천차만별로 달라지지 않던가.
커피 한 잔, 단팥의 단맛, 새벽 출근길을 비추는 달, 퇴근 후 마시는 맥주, 좋아하는 노래 듣기, 친구와의 수다 등 이야기의 소재는 제목처럼 정말 사소하다.
사소한 이야기를 다룬 산문집과 비교해 이 산문집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요소는 책이다.
오랜 세월 책과 가까운 삶을 살아온 저자는 자신의 일상에 다양한 책을 엮어 조곤조곤 다정하게 이야기를 풀어낸다.
새벽달을 바라보며 하루키의 <1Q84>에서 주인공이 달을 바라보는 순간을, 커피를 마시며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서 주인공이 탈진해 깨어나 마시는 커피를, 서가를 걸으며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을 자연스럽게 소환한다.
알랭 드 보통의 <일의 기쁨과 슬픔>, 요시모토 바나나의 <키친>, 김연수의 <세계의 끝 여자친구>, 천명관의 <고령화 가족>, 스티븐 킹의 <고도에서> 등 상당히 많은 문학 작품이 글에 인용되는데 현학적이지 않고 친절한 인용이어서 페이지를 넘기기 어렵지 않다.
이런 접근을 통해 작가는 우리의 사소한 일상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특별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나는 종종 소설을 쓰겠다고 멀쩡히 잘 다니던 회사에서 뛰쳐나온 게 잘한 일인지 자문한다.
답은 늘 "잘했다"이지만, 미래가 불확실하다 보니 자문을 멈추기가 어렵다.
특히 통장에 월급이 꽂혔던 매달 25일에는 더 그렇다.
이 산문집에 담긴 몇 줄의 문장이 꽤 위로가 됐다.
그 문장을 여기에 인용한다.
"그게 바로 완주의 아름다움이다.
뛰어왔건, 걸어왔건, 엉금엉금 기어 왔건 마침표를 찍는 것 자체가 멋진 일이다.
그 누구도 아닌 자신에게 자신을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승점을 통과할 때 비로소 이제까지 걸어온 길의 의미가 새삼스럽게 만들어진다.
그 길의 비밀은 중간에 그만두면 결코 알 수 없는 것이다."(174~175페이지 '시작이 취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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