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집에 실린 일곱 작품의 주인공은 모두 인생이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사람이다.
인생에서 뒤통수를 맞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냐마는, 그런 상황에 놓였을 때 대처하는 방법은 저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안간힘을 쓸 테고, 누군가는 흐름에 몸을 맡겨 목적지를 알 수 없는 어딘가로 흘러갈 테다.
또 누군가는 자신이 부서질 걸 알면서도 달려들 테고, 누군가는 측면돌파를 시도할 테다.
이 소설집의 주요 등장인물은 여성이고 일부를 제외하면 청년 세대다.
그들의 심리를 한 단어로 요약하면 '불안'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불안을 가라앉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외부로 표출하는 건데,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순 없다.
불안을 야기하는 외부 요인이 변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역치가 높아져 불안을 가중한다.
불안을 다스리는 어렵지만 근본적인 방법은 결국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일 테다.
등장인물들이 원하는 삶은 사실 대단하지 않다.
주어진 환경에서 동화책의 마지막처럼 "그리고 모두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 정도로 평범한 삶이 이어지면 족하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등장 인물들은 상대방의 말과 행동만으로 진의를 파악하기 어려워 난감해하고, 누군가와의 관계를 일도양단해 정의할 수 없어 당혹스러워하고, 끊어내야 하는 관계인 걸 알면서도 끊어내지 못해 무력감을 느낀다.
등장인물의 선택은 요가를 비롯해 저마다의 다양한 수련 방법으로 내면을 들여다 보는 일이다.
마치 <아함경> 같은 초기 불경에 담긴 가르침처럼.
작가는 그 과정에서 등장인물들의 변화하는 심리를 포착해 섬세하게 묘사한다.
누군가에게는 등장인물의 선택이 지나치게 수동적이거나 체념하는 모습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지 못하니까 내면으로 침잠하는 것 아니냐고.
글쎄다.
많은 사람이 SNS를 보며 괴로워하는 이유는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기 때문 아닌가?
내가 나로 설 수 있으려면 내 중심을 세우는 게 먼저 아닌가?
모두가 혁명가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진 않다.
불완전한 나를 받아들이되, 불완전을 이유로 나를 망가뜨려선 안 된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나는 이 소설집을 그렇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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