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이름을 가리고 읽으면 한국 소설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배경은 중앙아시아 지역인 키르기스스탄이고 등장인물은 현지인이다.
이국적인 풍경과 정취가 마지막 페이지까지 이어진다.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이 깊고, 이를 다루는 문장이 섬세하고 우아하다.
보편적인 주제를 다루는데, 이를 표현하는 방식은 낯설어 신선했다.
이런 작품을 쓴 작가가 젊은 작가이고, 심지어 이 작품이 작가의 첫 장편이라니.
많이 놀랐다.
이 작품은 키르기스스탄에서 어학연수를 했던 한국인 '윤'이 현지 하숙집 주인의 부고를 전해 듣고, 그로부터 수양딸의 유품인 공책을 전달받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후 펼쳐지는 이야기는 '윤'이 공책을 한국어로 번역한 내용의 연속인데, 따로 '윤'의 코멘트가 더해지지 않아 읽다 보면 공책의 주인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기분이 든다.
우리는 대단한 사람으로 살지 못한 채 늙고 병들어 사라질지라도, 누군가에게 이야기로 기록되는 한 사라지지 않는다.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먼 나라에 도착한 공책이 생명력을 얻으며 전하는 메시지다.
돌이켜보니 나를 가장 많이 바뀌게 한 계기는 갑작스러운 이별들이었다.
책을 덮으며 지난 이별들의 의미와 그 이별들이 내게 남긴 게 무엇인지 생각해봤다.
내 이별은 늘 갑작스러웠고, 나는 제대로 애도할 시간을 갖지 못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별의 상처에서 벗어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소설, 특히 장편소설 <나보다 어렸던 엄마에게>를 쓴 뒤에야 애도의 시간을 갖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이 작품을 읽으며 <나보다 어렸던 엄마에게> 초고 집필을 마쳤을 때와 비슷한 기분을 느꼈다.
나는 죽을 때 얼마나 많은 이의 이름을 기억할 수 있을까.
내 이름은 과연 얼마나 많은 이의 마지막 기억에 남을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어 가슴이 뻐근했다.
아름다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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