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놓고 깜빡한 채 읽지 않았던 책을 꺼내 읽었다.
이 소설집에 실린 단편의 주인공은 대부분 예술을 전공한 10대 후반부터 20대 초중반에 걸쳐 있는 여성이고, 위태로워 보이는 연애 이야기가 서사의 주를 이룬다.
20세기 말에 남학교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고 예술과 먼 전공(법학, 컴퓨터공학)을 한 40대 중년 남자인 나는, 멋쩍게 낯선 세계를 몰래 엿본 기분이 들었다.
그 나이대는 성별과 상관 없이 인간적인 호감과 이성으로서의 끌림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지 않던가.
이 소설집은 그 시절에는 몰랐지만, 세월이 흐른 뒤에야 깨닫는 감정을 섬세하게 다룬다.
특히 플러팅과 가스라이팅에 관한 묘사가 상당히 적나라하다.
'베이비 그루피' 같은 단편이 그랬다.
몇 년 동안 음악기자로 일하며 홍대 앞을 자주 드나들었고, 클럽이나 술자리에서 팬과 사귀는 아티스트를 꽤 많이 목격했다.
갑과 을이 명확한(갑은 늘 아티스트다) 그리 아름답진 않은 관계가 많았는데, 내가 봤던 풍경이 소설에 실감 나게 묘사돼 있어 꽤 놀랐다.
아무래도 나는 학생 신분인 주인공이 등장하는 전반부보다는 사회에서 밥벌이하는 청년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후반부를 더 공감하며 읽었다.
발랄한 느낌을 주는 표지만 보고 달려들면 꽤 무거운 내용에 당황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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