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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기

김의경 장편소설 <헬로 베이비>(은행나무)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23. 5. 5.

 



소설을 읽는 일이 다른 인생을 경험할 수 있는 가장 가성비가 좋은 방법이란 걸 실감하게 해준 작품이었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작품은 여성의 임신을 주제로 다룬 작품이다.
더 나아가 보자면 임신이라는 공통 분모로 여성이 연대하고 서로 위로하는 이야기라고 짐작해 볼 수도 있겠다.

이 작품을 다룬 기사도 대부분 그런 논조였지만, 책을 덮은 뒤 감상은 "글쎄?"다.
책을 덮은 뒤 느낀 기분은 복잡했다.
나는 이 작품을 읽고 우리가 과연 서로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존재인지 의문이 들었다.

이 작품의 등장인물은 모두 난임 여성이다.
이들의 직업은 프리랜서 기자, 변호사, 수의사, 경찰, 가정주부 등 다양하다.
평소에는 서로 만날 일이 없는 이들이 난임 여성이라는 공통 분모를 매개로 연결돼 유대를 맺는다.
작가는 각 등장인물의 사연을 옴니버스 형태로 보여주는데, 읽는 내내 숨이 막혔다.

뉴스는 세계 최저 출산율을 경신했다며 위기라고 떠드는데, 뉴스 바깥에선 임신에 목숨을 걸고 병원을 드나드는 여성이 즐비하다.
그렇다고 그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곱진 않다.
시댁의 압박은 늘 여성에게로 향하고, 직장에서도 이들을 향한 시선이 싸늘하다.
같은 여성조차도 우군이 아니다.
미혼 여성뿐만 아니라 이미 아이를 낳아 길렀던 여성도 말이다.
소설을 읽으며 기자로 일하던 시절에 한 여자 선배가 내 앞에서 육아 휴직한 다른 여자 선배를 심하게 욕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남편은 말할 것도 없다.
그냥 남의 편이다.
심지어 같은 난임 여성 사이에서도 서로 입장이 다르다.
첩첩산중이다.

이 작품은 기혼 여성이 임신 이전과 이후에 겪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독자에게 묻는다.
아무리 저출산 시대여도 진심으로 아이를 낳고 싶고, 그 아이를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아느냐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생각이다.
소설은 종종 저널리즘보다 더 저널리즘에 가까운 역할을 한다.
이 작품은 임신과 난임을 다룬 그 어떤 기사보다 생생하고 현실적이었다.

작품 속 등장인물은 도대체 왜 아이를 낳으려고 애를 쓰는 걸까.
작가는 '작가의 말'을 통해 "그냥 '만나고 싶다'라는 말 외에는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고 고백한다.
이보다 솔직하고 설득력 있는 고백이 있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