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덮은 후 이런저런 감상을 쓰다가 한 단편에 실린 문장이 떠올라 멈췄다.
"MSG는 남자를 죽이겠다고 해놓고 여자를 죽였다.(중략) 그러나 나는 의구심이 든다. MSG는 처음부터 남자를 죽일 생각이 없었던 것이 아니까? (중략) 당신은 그런 부류가 되고 싶은가? 남자를 죽이기로 해놓고 여자를 죽이는, 아버지를 때리고 싶지만 어머니를 패는,"('살인자들의 무덤' 中)
참고로 MSG는 문세광이고 남자는 박정희 전 대통령, 여자는 육영수 여사를 의미한다.
재일 교포인 문세광은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박정희 암살을 시도했다.
사건 당시 문세광은 권총을 꺼내려다가 첫 탄환을 자기 허벅지에 오발했다.
놀란 문세광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연단을 향해 뛰어나가면서 두 번째 탄환을 박정희에게 발사했는데 연탁에 맞았다.
사람들이 몰려들자 문세광은 더 앞으로 달려 나가 탄환 세 발을 더 발사했고, 그중 한 발이 육영수의 머리에 맞았다.
문세광은 처음부터 박정희를 노렸으나 실패했다.
이게 당시 실제 상황이다.
나는 이 문장을 읽고 소설에서도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제목을 다 기억하진 못해도 다른 작가의 소설에서도 이런 사례를 종종 목격했다.
이 소설집에 실린 단편은 젊은작가상, 문지문학상 등 굵직한 상을 받았다.
한국 문학이 가까운 미래에 코어 독자만 찾는 소수의 취미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는데, 그 생각이 점점 확신으로 변해간다.
그래도 소설집 전반부에 연작소설처럼 실린 '하긴', '그친구', '이중 작가 초롱'은 좋았다.
과거 학생운동에 투신했던 이들의 내로남불과 도덕적 허위, 속물근성을 꼬집는 부분은 우습고 통쾌했다.
실제 독자의 항의 메일을 소설 안으로 끌어들인 '무릎을 붙이고 걸어라'는 신선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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