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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기

한소범 산문집 <청춘유감>(문학동네)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23. 6. 30.

 



작가는 언론계는 물론 출판계에서 소문난 문학기자였고, 그 소문은 현재진행형이다. 언론사는 보통 중견 기자를 문학 담당 기자로 배치한다. 그만큼 무게감 있게 받아들여지는 자리에 나이 서른도 안 된 젊은 기자가 불과 몇 년 만에 업계가 인정하는 훌륭한 문학기자가 됐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한때 김훈 선생님이 머물렀던 자리에서? 보통 사건이 아니다. 

하필 나는 짧았던 문학기자 시절에 작가와 함께 필드에서 뛰었다. 그리고 백전백패였다. 내가 그 시절에 가장 많이 참고한 기사는 작가가 쓴 한국일보 기사였다. 부지런하고, 관심사가 넓었으며, 이슈의 핵심이 무엇인지 빠르게 파악했고, 무엇보다도 기사를 참 잘 썼다. 이러니 소문이 안 날 수가 있나. 그렇게 작가는 현재 대한민국 출판, 문학 시장에서 가장 사랑받는 기자가 됐다.

작가는 살면서 단 한 번도 문학 기자를 꿈꾼 일이 없었다. 소싯적부터 문학에 빠져 소설가를 꿈꿨고, 그 사이에 영화에도 마음을 빼앗겨 버려 한 시절을 불태웠다. 작가는 그저 실패를 거듭하며 이곳저곳을 헤매다 보니 얼떨결에 지금의 자리로 오게 됐다고 고백한다.

이른바 예술이라고 불리는 모든 게 그렇지 않은가? 언제 결과물이 나올지 모르고, 결과물이 나오더라도 인정을 받는다는 보장이 없다. 그러다 보면 끊임없이 자신을 의심하게 되고, 자기파괴로 이어지기도 한다. 재능 없는 열정은 비극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작가는 실패와 타협하며 플레이어 자리를 욕심내지 않기로 한다. 이 선택이 많은 이의 사랑을 받는 문학기자로 이어질 줄은 작가도 몰랐다. 지난 실패가 모두 문학기자로 빠르게 성장하는 자양분이 될 줄은 더 몰랐다.

이 산문집을 읽으며 작가가 훌륭한 문학기자로 거듭날 수 있었던 배경을 짐작할 수 있었다. 치열하게 살았고, 많이 울었고, 많이 넘어져봤다. 글 어디에도 과장이 없고, 일부러 겸손한 척도 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진솔하고 담담하게 털어놓을 뿐이다. 깨져 봤으니 안다. 자신이 끝까지 걷지 못한 길을 걷는 이들이 무엇을 고민하고 무엇을 포기했는지 말이다. 그래서 진심으로 응원할 줄 안다. 섬세하고 다정한 응원의 문장이 처음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이어진다.

대법원이 명예훼손죄를 판단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하게 따지는 법리는 전파가능성이다. 판례는 기자 단 한 명에게 정보를 알리는 것만으로도 전파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그렇다. 기자는 국가 공인 떠버리다. 그런 떠버리들이 모인 언론계에서 얼마나 소문이 빠르게 돌겠는가. 어느 매체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누가 어떤 사고를 쳤는지 거의 실시간으로 공유된다.

이는 어떤 기자가 취재를 잘하고 좋은 기사를 쓰는지에 관해서도 금방 소문이 난다는 말과 같다. 단지 서로 대놓고 이야기하지 않을 뿐이다. 기자들은 대체로 질투가 많아 칭찬에 인색한 편이거든.

기자나 기자 출신 작가가 쓴 책을 잘 보도하지 않는 문화를 모르는 건 아니다. 그런데 이 산문집, 솔직히 잘 쓴 책 아닌가? 많이들 기사화해 주길 바라는 마음에 먼저 나서서 떠버리 흉내를 내봤다. 읽는 내내 입가에 머무는 잔잔한 미소를 지울 수 없었던 좋은 산문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