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으로 이효석문학상, 젊은작가상 등 굵직한 상을 받은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다.
이 작품은 남산 아래 오래된 상가 건물에 갑자기 함께 살게 된 할머니와 손녀 이야기를 그린다.
할머니의 이름은 '사귀자', 손녀의 이름은 '아세로라'
임성한 작가의 독특한 작명 센스를 떠올리게 하는 이름인데, 그 이름처럼 이 작품은 꽤 무거운 주제를 시종일관 무겁지 않게 다룬다.
사귀자는 하숙집을 운영하다 간첩으로 몰렸던 과거를 숨긴 채 조용히 살아가는 노인이고, 아세로라는 햇살을 피해야 하고 가공식품을 먹지 못하는 희귀병으로 세상을 떠난 동생을 떠나보내지 못하고 겉돈다.
둘은 상가 건물 2층의 등기부상 미등록 공간에서 동거하며 서로 츤데레처럼 굴다가도 의지한다.
사귀자의 지난 삶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벌어진 비극의 교집합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배움이 짧아 몇 차례 사기를 당하고, 재개발에 밀려나 머물던 곳에서 쫓겨날 위기에 놓이고, 그저 글씨를 베껴 쓴 것뿐인데 간첩으로 몰린다.
이쯤 되면 차라리 없는 사람처럼 숨어 사는 게 편하다.
세상이 바뀌었더라도 말이다.
작가는 이미 여러 단편에서 보여줬던 발랄한 필치로 민감한 주제를 민감하지 않게 묘사하며 세대를 넘어 두 주인공이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읽기 부담스럽지 않고 유쾌하지만, 김애란 작가처럼 장편보다 단편이 더 좋은 작가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내겐 이 작품이 무게감과 유쾌함을 온전히 결합했다고 느끼게 하지 않았다.
이 작품처럼 현대사와 가족 서사를 엮으면서도 무게감과 유쾌함을 동시에 훌륭하게 살린 정세랑 작가의 장편소설 <시선으로부터> 같은 작품도 있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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