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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기

청예 장편소설 <라스트 젤리 샷>(허블)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23. 11. 20.

 



초지능 안드로이드인 '인봇' 삼남매와 이들을 만든 연구자가 윤리 법정에 오른다.
각 인봇의 이름은 '엑스', '데우스', '마키나'.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들의 능력은 신과 비교될 정도로 대단하다.
'엑스'는 인간의 노동을 돕는 인봇으로 지금까지 맡았던 모든 임무를 훌륭하게 완수했다.
'데우스'는 엄청난 지적 능력을 발휘하는 인봇으로 세상 모든 것을 논리적으로 바라보고 해석하는 데 탁월하다.
'마키나'는 인간의 감정을 세밀하게 이해하는 인봇으로 간병에 최적화된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런데 충격적이게도 이들은 모두 인간을 해치고 말았다.
그야말로 완벽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 세 인봇은 무슨 이유로 그런 선택을 한 걸까?
작품을 읽기 전부터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설정이다. 

이 작품의 매력은 완벽에 다다르고자 하는 인간의 노력이 어떻게 치명적인 결함으로 이어지는가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는 점에 있다.
이 작품 속에서 인봇들이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을 한 이유는, 어처구니없게도 논리로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을 최선을 다해 이해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엑스'는 예술 창작 때문에 괴로워하는 작곡가를 돕다가, 그의 고통을 줄이기 위한 선택은 죽음뿐이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무속인을 돕기 위해 파견된 '데우스'는 자신의 논리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갈등하다가 급기야 자신이 무복을 입고 작두를 탄다.
아이를 간병하던 '마키나'는 인간과 인봇이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없는 현실을 괴로워하다가 인간을 인봇처럼 만들려고 시도한다.
세 인봇의 선택은 인공지능이 예술 작품을 창조할 수 있는가, 논리로 증명할 수 없는 종교와 미신을 이해할 수 있는가, 인간과 얼마만큼 가까워질 수 있는가를 차례로 화두를 던진다.

심정적으로는 원고 측의 입장에 동조하고 싶은데 영 찝찝한 기분을 지울 수 없다.
인봇들은 인간이 정해놓은 가치중립적 태도를 잊고 인간을 해쳤지만, 이들의 마지막 선택이 인간의 불합리함과 묘하게 닮아있기 때문이다.
인간성을 가져서는 안되는 인봇이 논리적으로 다다른 결론이 이토록 인간적이라니...

이런 아이러니로 인한 비극적인 결과는 과학은 과연 가치중립적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글쎄... 과학이 가치중립적일 수 있나? 
인간과 관련한 활동이 가치중립적인 태도를 가지는 게 가능한가?
인간의 모든 활동은 인문적 활동이고 과학 또한 그 연장선에 있지 않나?
다 읽고 나면 꽤 머릿속이 복잡해질 작품이다.
독서 토론 모임에 이 작품이 주제로 오른다면 꽤 시끄러운 자리가 마련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