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셋방을 전전하며 살다가 영끌해 평생소원인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뤘다.
그런데 세입자를 들일 때마다 문제가 생기고, 얼마 안 되는 월급은 버는 족족 주택담보대출 이자를 갚는 데 써야 한다.
어깨에 짐처럼 짊어진 집을 끝까지 지키는 게 옳은지, 집에서 벗어나는 게 옳은지 고민하던 주인공.
그런 주인공에게 더 큰 고민을 짊어지게 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회사 후배 직원이 상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호소하다가 억울하게 회사에서 쫓겨났는데, 공교롭게도 주인공은 성추행 현장을 촬영한 사진을 증거로 가지고 있다.
후배의 처지는 가엾지만, 괜히 나섰다간 상사에 밉보여 회사에서 쫓겨나 월급이 끊겨 이자 상환이 밀리고 집을 내놓아야 할지도 모른다.
당신이 주인공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이 작품은 부당한 현실과 작은 양심 사이에서 고민하는 주인공을 통해 소시민의 작은 양심에 따른 행동이 이 사회를 지탱해주고 있지 않느냐고 묻는다.
다소 뻔한 질문과 결론을 담은 착한 소설이지만, 주인공이 처한 상황이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페이지를 넘기면서 고개를 끄덕일 때가 많았다.
사실 나는 이 작품에 담긴 메시지보다 오랜 셋방살이의 설움을 다룬 핍진한 묘사에 더 공감했다.
내 가족은 어린 시절에 정말 많이 이사를 다녔고, 꽤 오랫동안 단칸방에서 살았다.
어느 순간 동네 아이들 모두 유치원으로 가서 나만 홀로 공터에 하루 종일 남았던 일, 달동네에 산다고 부잣집 녀석들이 던진 돌에 맞아 코가 부러졌던 일, 아파트 놀이터에서 놀다가 거기에 사는 아이들이 경비원에게 고자질에 쫓겨났던 일, 장마철에 집안에 물이 차서 자다가 일어나 쓰레받기로 물을 빼냈던 일 등 잊고 살았던 기억이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머릿속에 되살아났다.
소싯적에 지지리도 없이 살았다면, 울컥할 부분이 많은 작품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작가는 '작가의 말'을 통해 단 한 번도 이사를 가본 적이 없고, 평생 부모님과 함께 자가주택에서 살아왔다고 쑥스럽게 고백한다.
본인 경험 없이는 이렇게 자세히 쓸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반전이었다.
살짝 배신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철저한 취재가 실감 나게 소설을 쓰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해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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