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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기

김초엽 장편소설 <파견자들>(퍼블리온)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23. 12. 21.

 

 



언젠가 우리 모두가 별의 자식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충격을 받았었다.
인간을 구성하는 물질은 모두 별에서 왔고, 인간은 그 물질이 우주적 시간 기준으로 찰나 동안 모여있다가 흩어지는 존재에 불과하며, 언젠가 다시 어느 별의 일부가 될지도 모른다는 말.
태양은 항성 규모에 비해 중원소 함량이 높은데, 태양보다 먼저 그 자리에 있던 '퍼스트 스타'가 소멸한 뒤 만들어진 중원소가 태양의 재료가 됐을지도 모른다는 주장을 읽은 일이 있다.
그렇다면 인간은 사라지지 않는 수많은 원자가 별을 통해 순환하는 과정의 일부에 불과할 테다.
'창백한 푸른 점' 위에 우연한 계기로 결합한 물질 덩어리에 불과한 인간이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자아로 살아간다는 건 착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기운이 빠졌던 기억이 난다.

이 작품은 인간이 독립적인 자아라 살아가는 게 가능한지, 낯선 존재와 공존이 가능한지 처음부터 끝까지 집요하게 묻는다.
비슷한 주제를 다뤘던 작가의 단편 <인지 공간>의 규모를 더 확장했다.
원고량이 상당한데도 술술 읽히고, 영화를 보듯 장면이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진다.
특히 작가의 전작들과 비교해 시각적인 묘사가 두드러진다.
다양한 색채로 이뤄진 위험하면서도 매혹적인 세계를 상상하며 읽는 일이 흥미로웠다.
동시에 기시감도 많이 들었다.
범람체로 불리는 외계 생명체가 지상을 차지한 설정에선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지상을 탐험하는 주인공의 행보와 선택에선 제임스 카메론의 영화 <아바타>를 자연스럽게 떠올렸다.

인간은 온전히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으며, 이미 다른 존재와 유기적으로 결합해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이 작품의 메시지는 설득력이 있었다.
인체 내 미생물 개체수는 약 100조 이상, 그 무게는 약 2kg으로 추정된다지 않던가.
심지어 그 미생물이 우리의 사고와 행동에 알게 모르게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하고.
인간이 다른 생물보다 특별하고 개별적인 존재라는 생각은 착각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읽는 재미와 작품의 밀도만 따지면 확실히 작가는 장편보다 단편에 훨씬 더 강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만큼 작가의 데뷔작인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 대단했다는 말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