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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기

앤솔로지 <몸스터 (몸은 몬스터)>(스피리투스)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24. 5. 8.

 

 


2001년 초겨울, 나는 대학교에서 논술시험을 치렀다.
오른손에 깁스를 한 채 왼손으로 펜을 쥐고.
오른손잡이인 나는 왼손으로 삐뚤빼뚤 천천히 글씨를 쓰며 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내 몸에 붙어있는 내 팔이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게 이렇게 답답한 일인 줄 몰랐다.

주어진 시험지를 반도 채우지 못하고 나오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내 몸도 마음대로 못 하는데, 다른 사람이 내 마음대로 움직여주길 바라는 건 과한 욕심이 아닐까?
오래전 일이지만 지금도 생생할 정도로 인상적이어서, 나는 누군가에게 별 기대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이 앤솔로지를 읽으며 오래전 경험을 떠올렸다.
여기에 수록된 다섯 작품에는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 몸을 고민하는 청소년들이 있다.
자기가 원하는 몸을 만들고 싶어서 미친 듯이 다이어트를 하고, 헬스장에서 쐬질을 한다.
그런데 어디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는가.
먹다가 토하고, 공부하려 앉으면 졸려 죽겠고...
나이 먹어 돌이켜 보면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오는 추억이지만, 그 시절에는 그 어떤 고민보다도 무거웠던 고민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 몸에 관한 고민 아니던가.

나도 그랬었다.
키는 작은데 머리는 크고 몸은 말라서 츄파춥스 같았던 외모가 싫었다.
무협지에 미쳐있던 시절이어서 내 안에도 무언가 특별한 능력이 있을 줄 알고 지식호흡 흉내를 내며 내공을 쌓으려고 해봤는데 숨만 막히더라.
차라리 빨리 나이가 들면 나을 줄 알았는데, 키는 그대로이고 몸에 살만 덕지덕지 붙어버렸다.

그래도 어찌저찌 잘 살아간다.
그런 몸도 그런대로 잘 사용하면 재미있는 일이 생기더라.
소설 속 청소년들도 나이 들면 그렇게 되겠지.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