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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기

유은지 장편소설 『귀매』(문학동네)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24. 9. 9.

 



읽으면서 영화 「파묘」를 보는 기분이 들었다.
「파묘」의 소재는 일본 요괴인 '오니'이고, 이 작품의 소재 역시 요괴의 일종으로 우리에겐 낯선 '귀매'다.
또한 이 작품도 「파묘」처럼 무속 신앙뿐만 아니라 일제강점기와 친일파 등을 다루기 때문에 기시감이 많이 들었다.
이 작품은 2002년에 출간된 원작의 개정판이니, 「파묘」가 이 작품을 닮았다고 말하는 게 옳겠다.


이 작품은 우연히(알고 보면 철저한 계획에 따라) 마을 제의 연구를 위해 부산 다대포를 찾았다가 초자연적인 사건에 얽힌 대학생들의 개고생을 그린다.
이 과정에서 일제강점기 당시 다대포에서 벌어진 비극과 누군가의 거대한 탐욕이 드러나고, 이에 따라 마을에 쌓인 원한이 넘쳐흘러 위험수위에 다다른다.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영능력과 문화인류학이라는 전공지식(전통문화, 민속, 무속 등)을 살려 난관을 헤쳐 나간다.
작품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공포스럽기보다 축축하고 음산하다.
더운 날 밤에 홀로 조용히 방에 앉아서 이 작품을 읽으니 등골이 서늘해졌다.
작품 속 설정이 허구가 아니라 실제 전통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마냥 미신으로만 느껴지진 않는다.

「파묘」 이전에도 이미 한국의 정서와 문화를 담은 오컬트 호러물이 있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 작품의 의미가 있겠다.
재미있게 읽었지만, 꽤 큰 기대를 하고 읽었기 때문에 아쉬움이 없진 않다는 말은 보태야겠다.
「파묘」 이전에 이 작품이 있었지만, 이 작품 이전에 이미 『퇴마록』이 있었으니 말이다.
이 작품을 덮으며 『퇴마록』이 얼마나 대단한 작품인지 새삼 느꼈다.
한국 오컬트의 시조새가 『퇴마록』인데, 이를 능가하는 작품이 아직도 나오지 않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