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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기

문지혁 산문집 『소설 쓰고 앉아 있네』(해냄)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25. 4. 30.

 

 



'채널예스'에 연재됐던 시절에 꼬박꼬박 챙겨 읽었던 글을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당시 고정 독자 상당수는 작가와 작가 지망생이지 않았을까.
연재를 읽을 때마다 "나도 그래!"라며 로커처럼 헤드뱅잉을 했다.
웃기고 싶은데 겸연쩍어 대놓고 웃기지는 못하는 작가 특유의 유머도 좋았다.

읽으면서 꽤 많은 걸 새롭게 배웠다.
오토픽션을 비롯해 서사, 플롯, 이야기 등 희미하게 알고 있던 개념도 선명해졌다.
내가 지금까지 왜 그렇게 소설을 써왔는지, 왜 1인칭 주인공 시점에 집착하는지, 왜 그런 플롯을 쓰는지 이 산문집을 통해 알았다.
교재로 사용해도 좋을 만큼 내용이 풍성하다.
다정하면서도 사려 깊은 선생님의 수업을 닮았다.

공감하며 따로 체크해둔 부분이 적지 않다.
우리가 쓰는 이야기는 우리의 평범함이 실은 위장된 비범함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조언을 읽고 무릎을 쳤다.
우리가 남이 잘된 이야기보다 잘못된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는 이유를 생존과 엮어 설명한 부분에선 머리를 한 방 맞은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가 잘된 이야기는 내게 남아 있는 기회와 가능성을 줄이기 때문에 도파민 분비 안 되고, 잘못된 이야기는 생존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도파민이 분비된다니.
오랫동안 가졌던 의문이 명쾌하게 해결됐다.
희극을 만들고 싶다면 외면적 목표를 좌절시키고 내면적 목표를 성취시키라는 조언을 읽고 내가 해피엔딩을 쓰는 방식이 이거였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욕망을 가진 주인공을 따라가다 보면 이야기는 저절로 완성되며, 최고의 플롯은 작가조차 이야기를 쓰다가 발견하는 플롯이라는 조언에도 격하게 공감했다.
현역 작가라면 3부 '책상 밖으로'가 흥미로울 테다.
그중에서도 문단을 '우동 거리'에 비유한 글이.

유독 기억에 오래 남는 문장이 있다.
실패를 견딜 수 있었던 이유는 재능이 있다고 착각했기 때문이라고.
그리고 그 착각도 아주 중요한 재능이라고.
돌이켜보니 나도 그 착각 덕분에 버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