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키운 반려동물은 언젠가부터 생태계 교란종으로 취급받는 붉은귀거북 세 마리였다.
내 의지로 키우기 시작한 거북은 아니었다.
1995년 초쯤 동생이 어머니를 졸라 시내에 있는 수족관에서 거북이를 샀다.
내 기억으로 마리당 2000원이었고, 작은 플라스틱 어항은 5000원, 사료는 한 봉지에 1000원이었다.
동생은 거북이에게 관심은 쏟은 기간은 처음 며칠뿐이었다.
어항은 곧 거북이의 똥과 사료 찌꺼기 때문에 지저분해졌는데, 동생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이러다간 거북이들이 다 죽겠다 싶었다.
나는 동생에게 그럴 거면 거북이를 내게 넘기라고 말했다.
동생은 미련 없이 내게 어항을 통째로 넘겼다.
그게 거북이 키우기의 시작이었다.
키우는 동안 거북이들이 개체별로 성격이 모두 다를 뿐만 아니라, 얼굴의 생김새도 다름을 알 수 있었다.
주인을 알아보는 듯한 행동(그거 먹이를 주는 사람을 알아볼 뿐이었지만)을 할 때면 참 행복했다.
거북이들은 자주 눈병이나 피부병을 앓았다.
그럴 때면 나는 거북이들을 건조한 장소에 격리해 안약을 투여하고, 후시딘이나 항생제를 발라주곤 했다.
그러다 보면 금방 나았다.
거북이는 자주 어항에서 탈출해 사라지곤 했는데, 그중 한 녀석을 한 달 만에 장롱 바닥 틈새에서 찾은 극적인 순간도 기억난다.
20년도 훌쩍 넘은 기억이지만, 그때 거북이들과 함께 쌓은 추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반려동물을 키워본 경험이 있다면, 그중에서도 마이너한 종을 키워본 경험이 있다면, 이 작품은 쉽게 몰입할 수 있는 장편소설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무려 17년 동안 타란툴라 '두희'를 키웠다.
다른 반려동물도 아니고 거미, 그것도 커다랗고 털이 많은 거미다.
도저히 친해지기 어려운 비주얼을 자랑하는 동물이다.
주인공에게 오랜 세월에 걸쳐 어떤 핍박이 이어졌을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을 테다.
이 작품은 주인공이 가족은 물론 연인에게도 인정받지 못하고 '두희' 때문에 주변 사람과 소원해지는 과정을 상세하게 묘사한다.
'두희'가 교감이 가능한 동물이라면 그나마 나을 텐데,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두희'는 절지동물이라는 특성상 개나 고양이와 달리 주인과 교감하기가 어렵다.
'두희'에겐 자기가 아닌 존재는 그 자체로 스트레스 요인이고, 주인도 예외가 아니다.
주인공이 '두희'를 제대로 만져보고 느끼는 유일한 순간이 죽은 뒤라니.
소통할 수 없는 존재와 함께 살아간다는 게 무슨 의미일까.
이 작품은 가능한 한 반려동물을 의인화하는 시선을 피해서 그 의미를 살핀다.
이를 통해 주인공은 그런 존재와 산다는 건 서로를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과정임을 깨달아나간다.
펫로스 증후군을 극복하는 과정을 다룬 치유물임과 동시에 반려동물을 향한 복잡한 윤리 문제를 생각해 보게 하고, 더 나아가 사람사이의 소통은 어떤 의미인지도 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훌륭한 장편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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