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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기

조영주 소설 『내 친구는 나르시시스트』(생각학교)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25. 6. 4.



학창 시절에 경험한 왕따나 학폭은 그 시절을 넘어 인생 전반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에 왕따라고 부르기엔 애매하고, 그렇다고 학폭이라고 부르기에도 애매한 경험을 했다.
거의 30년 전의 일이다.
고2 때 나는 반에서 일진(이라기에도 어설픈) 무리 중 하나와 시비가 붙었다.
이유는 확실치 않지만, 아마도 별거 없어 보이는데 뻣뻣한 내 태도가 그 녀석에게 거슬렸던 듯하다.
그냥 말다툼으로 끝날 줄 알았는데, 내가 자리에 앉자 그 녀석이 보온밥통으로 내 뒤통수를 세게 쳤다.
눈앞에 별이 보였다.
눈이 뒤짚힌 나는 의자를 들어 그 녀석에게 던졌고 동시에 몸싸움이 크게 벌어졌다.

그날 이후 고달픈 날이 이어졌다.
내가 거칠게 대응하는 모습을 본 일진 무리는 물리적인 폭력 대신 비아냥거림이나 뒷담화로 괴롭혔다.
대놓고 싸움을 걸면 두드려 맞더라도 맞대응할 텐데, 여러 명이 돌아가며 정신적으로 은근슬쩍 괴롭히니 대응할 방법이 없었다.
눈치를 보느라 내 편을 들어주는 같은 반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내가 대응하는 모습을 보고 속이 시원했다고 몰래 고백한 녀석도 몇몇 있었지만, 대놓고 내 편을 들진 않았다.
그렇게 나는 고립돼 갔다.

너무 괴로워서 담임 선생에게 이 같은 사정을 털어놓았는데, 돌아온 대답이 가관이었다.
"네가 잘못한 거다. 너처럼 모난 녀석이 결국 사고 치고 자살하는 거다."
이게 자신이 맡은 제자에게 할 말인가...
지금도 나는 학교와 교사를 그리 신뢰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내겐 학창 시절 친구가 거의 없고, 그 시절은 괴로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 작품을 읽으며 기억하기 싫었던 그 시절을 오래 되새김질했다.
내 경험과 이 작품 속 이야기에는 공통점이 별로 없다(이 정도로 미친 싸이코패스 빌런은 다행히 만나 보지 못했다).
그런데도 감정이입하는 부분이 많았다.
특히 방관하거나 동조하는 같은 반 학생들의 모습에서 말이다.
오랜 세월이 흘러서 그 시절의 기억이 흐려진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다.
내 머릿속에 수많은 장면이 이토록 생생하게 남아있을 줄은 몰랐다.

이 작품 속 주인공의 선택은 측면 돌파다.
정면 돌파처럼 멋있진 않지만, 꽤 용기 있는 선택이다.
열린 결말이어서 좋았다.
그게 답답하다고 느낄 독자도 있겠지만 말이다.

작품을 읽은 뒤 오래전 내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었다.
지금 당장은 학교가 세상의 전부인 것 같지만, 사실 별거 없다고.
자퇴하고 나가서 혼자 공부해도 충분하다고.
그 시절에 남들보다 1~2년 늦어져도 인생에 아무 지장 없다고.
굳이 혼자 괴로워하지 말라고.
오래 전의 내가 이 작품을 읽었더라면, 다른 선택을 하는데 많은 용기를 줬을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