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맷돌, 서까래, 선글라스, 소금 항아리, 피아노...
이 작품 속 모든 사물은 영혼을 가지고 있고, 마치 인간처럼 사고한다.
마치 범신론을 소설로 읽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고 이 작품 속 사물이 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 속 장난감처럼 사람이 보지 않을 때 움직이는 존재는 아니다.
이 작품 속 사물은 움직일 수 없고, 일부 특별한 인간만 사물과 소통할 수 있을 뿐이다.
겉보기엔 우리가 사는 세상과 다를 게 없다.
다만 한 가지 중요한 규칙이 있다.
사물은 결코 인간사에 개입해선 안 된다.
이를 어기면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될지 모른다.
불탄 집에서 겨우 형태를 유지한 채 발견된 목재가 있다.
기억을 잃은 채 발견된 목재는 새로운 집의 기둥으로 만들어지는데, 그곳에서 자신의 과거를 아는 맷돌을 만나 자기가 여기까지 오게 된 이유를 듣게 된다.
이 지점에서 이야기는 급박하게 전환해 한 가족의 비극으로 이어지고, 이를 집안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여러 사물은 괴로워하다가 중요한 규칙을 깨는 선택을 한다.
그와 동시에 이야기는 가족이라는 좁은 범위를 넘어 사회, 역사, 종교로 영역을 확장한다.
대단히 다채로우면서도 신비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작품이다.
이야기의 가지를 뻗어나가는 방식이 독특하고 흥미로웠다.
SF나 판타지와는 성격이 다르다.
특히 맷돌의 구도 과정을 그린 2부를 읽을 땐 임권택 감독의 영화 '만다라'를 감상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깊은 문답을 주고받는 철학 강의를 연상케 하는 묵직한 장편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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