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에는 어떤지 몰라도 내 어린 시절에는 학교와 관련한 괴담이 참 많았다.
밤 12시가 되면 이순신 장군 동상이 칼을 휘두르고 세종대왕 동상은 책을 던진다느니, 유관순 열사의 사진을 뒤집어서 보면 끔찍하게 변한다느니, 책 읽는 어린이 동상이 실제 어린이 시체로 만들어졌다느니...
국민학교 3학년 때 살았던 단칸방 근처의 중학교에 귀신이 나온다는 괴담이 있었는데, 그 옆 공터에서 공사를 하다가 오래 묵은 인골이 발견돼 동네가 뒤숭숭해지기도 했었다.
학교란 공간은 은근히 '백룸'을 닮았다.
낮의 학교는 밝고 시끌벅적한 공간인데, 밤의 학교는 몹시 을씨년스러우니 말이다.
이 작품은 밤의 학교 특유의 분위기에 타임슬립 요소를 가미해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세 학생의 모험을 다룬다.
장편소설이라는 타이틀만 붙어있지만, 청소년 판타지 소설이라고 말하는 게 이 작품의 성격을 드러내기에 딱 적당할 듯싶다.
세 주인공은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하얼빈역, 안 의사와 동료들이 갇혀 있던 뤼순 감옥, 재판이 아닌 개판이 이뤄졌던 법정에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여러 중요한 순간을 직접 목격한다.
이 과정에서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비행사였던 권기옥을 만나고 백범 김구 선생, 윤동주 시인과 인연을 맺으며 현재가 과거와 어떻게 이어지는지 몸과 마음으로 깨달아나간다.
세 주인공이 직접 그 현장의 중심에 서서 실제 역사 인물들과 시간과 경험을 공유하는 모습은 상상인데도 생생하게 다가왔다.
교과서와 문제집으로는 경험할 수 없는 허구적 진실의 힘이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역사인데도 새롭게 읽혔다.
일선 학교에서 역사 수업을 할 때 보조 교재로 사용하면 학생들의 호응이 상당하리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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