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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기

류현재 장편소설 『빼그녕』(마름모)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26. 8. 13.

 



2026 서울국제도서전에서 ‘한국에서 가장 재미있는 책’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는 홍보 게시물을 접했을 때, 내심 가벼운 성장소설일 것이라 예상했다. 표지 디자인은 아기자기한 파스텔톤이고, 주인공은 소녀이니까. 하지만 예상은 절반만 맞았다. 성장소설의 면모를 분명히 갖추고 있지만, 예상보다 훨씬 무겁고 생각할 거리도 많이 던져주는 작품이었다.

주인공 빼그녕(본명 백은영)은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보고 들은 모든 걸 기억하는 비범한 천재 소녀다. 어른들의 위선을 포착해 내는 조숙하면서도 날카로운 시선은 은희경 작가의 장편소설 『새의 선물』 속 주인공 ‘진희’를 자연스럽게 연상시킨다. 빼그녕이 진희보다 훨씬 아이답고, 엉뚱하다는 차이는 있지만 말이다. 이런 아이를 1인칭 시점으로 활용한 만큼 작품 분위기는 거침없고 생동감이 넘친다. 주인공의 모습을 보는 일만으로도 충분히 즐겁다.

그런데 후반부로 넘어가면서 미스터리한 사건이 전면에 등장하고, 소설의 시대 배경인 유신 시대의 그림자가 짙어지면서 페이지의 무게가 점점 무거워진다. 순박해 보이는 농촌에는 유신 시대의 엄혹한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고, 문중 사이의 뿌리 깊은 패권 싸움이 계속된다. 여기에 의문스러운 독살 사건과 환영받지 못하는 사랑, 외부인을 향한 편견 등 집단 이기주의가 여기저기서 튀어나온다.

지나치게 무겁게 흘러갈 수도 있는 서사를 지탱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빼그녕의 1인칭 시점이다. 비극적 사건 앞에서도 유머와 엉뚱함을 잃지 않는 빼그녕의 시선이 무게감을 적절히 덜어내는 무기가 된다. 더불어 그런 천진난만한 아이의 시선 때문에 당대의 비극과 어두운 사회 분위기가 더욱 선명하고 서늘하게 다가온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을 꼽으라면 결말부의 속도감이다. 
여러 사건이 숨 가쁘게 휘몰아친 후 다소 갑작스럽게 결말을 맞이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감당하기 버거운 시대를 정면으로 통과해낸 빼그녕이 이후 어떻게 성장해 나갔는지, 또 어떤 어른으로 자라났는지 조금 더 길게 보여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욕심이 남는다.
엉뚱하고도 사랑스러웠던 천재 소녀가 시대의 풍파 속에서 너무 갑자기 어른이 되어버린 것 같아 안쓰러웠다.
그만큼 빼그녕이라는 주인공이 매력적이었다는 의미일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