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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얼룩진 청춘 향한 애정 어린 시선과 고백…이지형, 3집 ‘청춘마끼아또’로 컴백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12. 11. 30.

세상에... 더블 앨범이다.

이젠 더블 앨범의 의미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세상에 더블 앨범이 나왔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대단하지만 그 안에 담긴 음악들이 만만치 않다.

청춘이 괴로운가? 그렇다면 '기분 좋게 청춘을 통과한 사람' 이지형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보라!

 

p.s. 나보다 3살 많지만 여전히 그의 얼굴엔 소년의 느낌이 더 강했다. 그와 함께 식사를 하던 중 문득 생활에 찌든 내 얼굴이 부끄러워졌다.

 

 

 

얼룩진 청춘 향한 애정 어린 시선과 고백…이지형, 3집 ‘청춘마끼아또’로 컴백

[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더블 앨범(Double Album). 밀리언셀러가 심심치 않게 나오던 90년대에도 컴필레이션 앨범이나 베스트 앨범 외엔 거의 없었던 형식이다. 외국의 경우에도 비틀스의 ’화이트 앨범(White Album)’과 핑크 플로이드의 ‘더 월(The Wall)’과 같은 거장들의 고전 외엔 흔치 않다. 하물며 지금은 디지털 싱글 몇 개로 간을 본 뒤 EP로 몇 곡을 묶어 ‘앨범’이라고 생색을 내는 세상이다. 발매와 동시에 빛의 속도로 사라지는 음원들이 수두룩한 세상에 더블 앨범이란 희귀종이 등장했다. 그것도 솔로 뮤지션의 앨범이다. 국내 솔로 뮤지션이 더블 앨범을 발표한 예는 전무후무하다. 이 무모한 도전의 주인공은 90년대 중반 밴드 ‘위퍼(Weeper)’로 홍대 인디씬 역사의 첫 장에 이름을 새겼던 싱어송라이터 이지형(34)이다.

▶ 앨범 멸종 위기 시대에 ‘더블 앨범’으로 승부= 이지형이 3집 ‘청춘마끼아또’를 발표했다. 2008년 2집 ‘스펙트럼(Spectrum)’ 이후 4년 만의 앨범이다. 2010년 소품집 ‘봄의 기적’이 쉬어가는 성격의 작품이었음을 감안하면 이지형의 공백은 꽤 긴 편이었다. 서울 서교동 연습실에서 만난 이지형은 “4년 간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무책임하게 놀았다”고 웃으며 “모든 것을 비우고 나니 앞으로 나아가야할 음악의 길이 보였고 이번 앨범은 그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언젠가부터 타성에 젖어 음악을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꾸준히 앨범을 발표하고 토이의 ‘뜨거운 안녕’에 객원 보컬로 참여한 이후 유명세를 얻게 나니 여유도 생기고 또 허세도 부리게 되더군요. 게으름과 여유는 백지장 차이예요. 이대로 가다간 음악을 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비워야겠다는 마음으로 모든 활동을 무기한으로 접은 뒤 재충전에 들어갔습니다. 결혼한 30대 남자가 일 없이 몇 년을 쉬는 일은 정말 부담스러운 일이지만, 다행히 아내와 소속사가 제 뜻을 이해하고 전폭적으로 지지해줬습니다. 오히려 동료 뮤지션들이 저를 말렸죠.”

누군가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많다는 것은 참으로 복된 일이다. 2장의 CD엔 각각 11곡씩 총 22곡이 수록돼 있다. 러닝타임만도 무려 101분에 달하는 앨범은 마치 장편 성장영화를 방불케 한다. 얼룩이란 의미를 가진 이탈리아어 ‘마끼아또(Macchiato)’처럼, 수록곡들은 저마다 방황, 갈등, 비겁함 등 다양한 청춘의 감정과 열병을 솔직하게 담아내고 있다. 이지형은 “이 앨범은 얼마 전에 태어난 아들을 위한 앨범”이라며 “언젠가 청춘을 맞게 될 아이에게 아버지의 청춘을 어땠는지 솔직하게 보여주고 싶다”고 고백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늘 똑같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항상 긍정적인 내용의 이야기만 해주고 싶어 하잖아요. 그래서 늘 선별된 이야기들의 반복이죠. 아버지에게도 젊은 시절에 비겁했던 순간과 겁쟁이였던 순간이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앨범엔 그리 아름답지 만은 않은, 제 스스로 기억에 담고 싶지 않은 이야기들이 많이 담겨 있습니다. 먼 훗날 이 앨범이 저와 아들이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이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디지털 싱글 위주의 음악 비즈니스 관점에서 바라보면 더블 앨범은 무모한 시도입니다. 그러나 시스템의 효율성과는 별개로 앨범은 진득한 내러티브를 가지고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더블 앨범을 만들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만든 곡을 추리다보니 70곡이 50곡으로 줄고, 50곡이 20곡 남짓으로 줄더군요. 굳이 여기서 더 줄여 CD 한 장에 억지로 곡들을 담고 싶지 않았습니다. 또 핑크 플로이드처럼 더블 앨범을 내는 일은 뮤지션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꿈 꿔본 소망 아닐까요?”

 



 


▶ 얼룩진 청춘 향한 애정 어린 시선과 고백= 더 이상 청춘을 자처하기 어려워진 나이에 청춘을 반추하는 이 앨범은 조용필 7집(1985)과 많이 닮아 있다. ‘어제 오늘 그리고’를 비롯해 ‘나의 노래’, ‘사랑하기 때문에’, ‘미지의 세계’, ‘아시아의 불꽃’ 등이 담긴 조용필 7집은 조용필의 역대 앨범 중 가장 젊음의 에너지로 넘친다. 조용필은 1997년 강헌 음악평론가와의 대담을 통해 “7집 제작 당시 젊은 나이는 아니었지만 젊음의 대변인이란 생각으로 곡들을 만들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공교롭게도 당시 조용필의 나이는 35세로 현재의 이지형과 비슷했다.

“지금 시점이 아니면 기록할 수 없는 이야기가 청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0대엔 이해할 수 없었던 많은 것들을 30대 중반에 이르니 이해할 수 있게 되더군요. 가장으로서 아버지로서 또 세상살이에 적당히 경험치를 쌓은 남자로서 지난 20대를 뒤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되돌아보니 모호하고 제대로 보이지 않아 그대로 흘려보낸 일들이 많습니다. 한 번쯤 정리해 짚고 넘어가고 싶었습니다.”

‘청춘’이란 이름을 가진 첫 번째 CD는 강렬한 밴드 사운드의 곡들로, ‘마끼아또’란 이름을 가진 두 번째 CD는 어쿠스틱 사운드를 기반으로 하는 감성적인 곡들로 채워져 있다. 수록곡 수만큼이나 두꺼운 속지엔 로모 카메라로 찍은 다양한 사진들이 실려 있다. 빛바랜 색감이 주는 아련함이 깊다.

 


“‘내가그린기린그림’은 음악적 우상이었던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을 자신과 동일시하다 겪은 정체성 혼란을, ‘청춘표류기’는 무엇 때문에 힘든지 모르는데 그저 힘들었던 시절을, ‘사랑해버렸네’는 사랑 앞에서 제대로 용기내지 못했던 모습을, ‘병든마음’은 첫 이별의 괴로움을 담고 있습니다. 로모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은 초점이 잘 맞지 않고 실험적인 느낌을 주는데, 이러한 왜곡된 질감이 청춘의 얼룩진 모습을 닮은 것 같았습니다. 제가 직접 찍은 사진들도 있지만, 배우 추소영 씨를 비롯해 전 세계 로모 카메라 사용자들의 허락을 받아 앨범에 실은 사진도 많습니다.”

아직도 자신을 청춘으로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이지형은 “나는 기분 좋게 청춘을 통과한 사람”이라며 “이제 새롭고 즐거운 또 다른 성장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고 여유를 보였다.

“앨범 타이틀곡 ‘청춘마끼아또’는 십 수 년 만에 완성된 곡입니다. 예전엔 제 직관보다 주변 조언을 더 많이 따랐습니다. 그런 선택이 틀리진 않았지만 돌이켜보면 제 직관이 더 나았던 경우가 많았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수도 없이 편곡과 멜로디를 바꾼 곡인데, 결국 원형 그대로 돌아왔고 또 결과물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남들이 뭐라 해도 제 자신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갈 생각입니다. 더블 앨범 자체가 그러한 제 의지의 결과물이죠.”

123@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