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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헤르쯔 아날로그 “일기장 속 서툰 문장 같은 따스한 힐링 음악”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12. 12. 7.

중저음이 믿기지 않는... 겸손함이 몸에 밴 앳된 미소년. 파스텔뮤직이 이 미소년을 아이돌로 키울 수 있을까?

겨울에 참으로 어울리는 음악들이 담긴 앨범이다.

 

p.s. 난 두 번째 히든 트랙의 비밀도 알지~ 헤르쯔 아날로그가 두번째 히든 트랙은 끝까지 가르쳐 주지 않아 오기로 찾아봤는데 의외로 쉽게 풀렸다. 두 번째 히든 트랙의 비밀 역시 앨범 크레디트에 담겨 있다.

 

 

헤르쯔 아날로그 “일기장 속 서툰 문장 같은 따스한 힐링 음악”

[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악기 편성을 덜어낼수록 곡의 멜로디와 가사는 선명해진다. 멜로디와 가사가 가난할수록 그 가난함을 가리기 위해 편곡은 화려해지기 마련이다. 좋은 멜로디와 가사는 그 자체의 생명력으로 화려한 편곡에 지지 않는다. 좋은 멜로디와 가사는 담담한 편곡 위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헤르쯔 아날로그(본명 허성준)가 첫 정규 앨범 ‘헤르쯔 아날로그(Herz Analog)’를 발표했다. 독일어로 ‘심장’을 의미하는 단어 ‘Herz’에 ‘아날로그(Analog)’를 더해 ‘아날로그 감성을 지닌 심장’이란 의미를 담은 예명처럼 앨범은 첫 멜로디만으로도 가슴 따뜻해지는 곡들로 풍성하다. 헤르쯔 아날로그는 “일기를 쓰듯이 한 곡 한 곡을 만들어 나갔다”며 “수록곡들은 모두 내 일상의 기록”이라고 고백했다. 쓸쓸함과 포근함으로 추억을 소환하는 멜로디와 가사는 지평선과 하늘의 경계를 허무는 자욱한 눈안개를 닮았다. 앨범 속 풍경과 계절은 고요하게 눈 내리는 겨울 산하다.


 


▶ 일상에 밀착한 멜로디와 가사의 따뜻함= 크라프트지 재질 앨범 커버에 검은색 끈으로 엮인 속지엔 손 글씨로 적은 트랙 리스트와 가사가 실려 있어 정감을 준다. 앨범 커버 마지막 자리는 LP의 형태와 표면의 요철까지 본을 따 제작된 CD의 차지다. CD엔 8곡의 보컬곡과 5곡의 연주곡 등 총 13곡이 담겼다. 헤르쯔 아날로그는 앨범에서 가장 공들인 부분에 대한 질문에 “최근의 가요들은 너무 화려한 느낌을 주는데, 그렇게 화려할 필요가 있는가 의문이 들었다”며 “청자가 편곡에 현혹되지 않고 가사와 멜로디에 집중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최소한의 악기만을 편성했다”고 답했다.

객원으로 참여한 보컬을 제외하면 앨범 크레디트에 이름을 올린 세션 뮤지션의 수는 한 손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 조촐하다. 스튜디오 녹음 특유의 엄정함 대신 힘을 뺀 연주는 라이브 같은 자연스러운 느낌으로 청자를 편안하게 만든다. 헤르쯔 아날로그는 “박자가 미세하게 맞지 않는 연주가 곳곳에서 들리는데 일부러 그대로 남겼다”며 “이를 통해 음악에 조금 더 사람답고 따뜻한 느낌을 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잔잔히 주변부로 퍼져나가는 음색의 피아노로 앨범의 문을 여는 연주곡 ‘이야기’를 지나면, 턱하니 쏟아지는 헤르쯔 아날로그의 중저음이 매력적인 앨범의 타이틀곡 ‘오랜만이다’와 만나게 된다. 헤어진 연인과의 우연한 재회와 복잡한 감정을 담담히 노래하는 ‘오랜만이다’는 감성적 스토리텔링을 지향하는 헤르쯔 아날로그의 음악적 정체성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곡이다. 뒤이어 흐르는 ‘작정을 하고 가면을 쓴다’는 괴로움에 쩔쩔매는 심정을 억지웃음으로 달래본 경험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작은 위로다. ‘김치찌개’, ‘그 노래를’처럼 일상에 밀착한 독백 형식 가사들의 울림도 깊다. 헤르쯔 아날로그는 “지난 여름에 발매한 ‘프렐류드(Prelude)’ 같은 EP엔 영화 감상이나 독서 등 일상에서 문득 떠오른 아이디어로 만든 곡들이 많은데, 이번 앨범엔 개인적인 경험이 많이 반영됐다”며 “평범한 내용의 따뜻한 위로가 있는 음악을 들려주고 싶었다”고 작곡 배경을 밝혔다.

자신의 목소리에 맞는 곡을 가장 잘 만들 수 있는 작곡가는 대개 싱어송라이터 자기 자신이다. 그러나 곡의 완성도와 싱어송라이터의 보컬 색깔이 반드시 어울리는 것만은 아니다. 싱어송라이터로서 헤르쯔 아날로그는 보컬로서의 욕심을 내려놓을 땐 확실히 내려놓고 있다. 파스텔뮤직의 신예 소수빈이 참여한 ‘꿈인 걸 알지만’과 지난 여름에 발매된 EP ‘프렐류드(Prelude)’의 수록곡 ‘내겐 그녀만 있으면 돼요’의 답가 성격으로 최서경이 부른 ‘내겐 그대만 있으면 돼요’, 최근 EP ‘데칼코마니’로 본격적인 싱어송라이터의 면모를 보여준 루시아(심규선)가 부른 ‘녹차우유곽’은 내려놓음의 미학을 잘 보여주는 곡이다. 특히 ‘녹차우유곽’은 촉촉한 슬픔의 이미지를 가진 루시아의 보컬에서 귀여움이란 새로운 매력을 끄집어낸 값진 트랙이다. 

 



▶ 곳곳에서 번뜩이는 ‘사운드 디자이너’의 면모= 헤르쯔 아날로그의 과거를 들춰보면 두 가지 이력이 가장 먼저 눈길을 끈다. 하나는 JYP엔터테인먼트 작곡가 출신이란 사실, 하나는 서울대학교 성악과 출신이란 사실이다. 그러나 그는 “JYP에 1년 반 정도 소속돼 있었지만 특별히 작곡가로서 활동하진 않았다”며 “전공도 성악과고 오랫동안 클래식을 공부해온 터라 대중음악에 대한 감을 잡지 못했는데, JYP에서 대중음악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그는 두 가지 이력을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앨범 크레디트를 살펴보면 헤르쯔 아날로그는 자신을 싱어송라이터임과 동시에 ‘사운드 디자이너’로 소개하고 있다. 그는 “본격적인 싱어송라이터로서 활동하기 전에 영화나 영상에 들어가는 효과음을 만드는 일, 즉 ‘사운드 디자인’을 했었다”며 “어렸을 때부터 MTR(멀티트랙레코더)로 다양한 소리를 녹음하는 일을 즐겼는데 ‘사운드 디자이너’란 타이틀도 그러한 이력에서 비롯된다”고 배경을 전했다.

앨범에 수록된 연주곡들은 ‘사운드 디자이너’로서의 헤르쯔 아날로그를 보여주는 트랙들이다. 2009년 작 싱글 ’스코어 글리치(Score Glitch)’의 수록곡을 리마스터해 실은 ‘새드 페이퍼(Sad Paper)에선 종이를 넘기고 찢는 소리가 곡에 극적인 효과를 더한다. ‘아련한 기억’은 신스 사운드와 퍼커션 비트 위에 첼로의 선율을 얹은 묘한 조합이 인상적이다. 이 앨범이 유행의 흐름도 감상의 호흡도 빨라진 현재의 음악 시장과 대척점에서 서있는 듯하면서도 가깝게 느껴지는 이유는 이러한 트랙들 때문이다.

그는 “영상을 위한 음악도 음악을 위한 영상도 아닌, 음악과 영상이 조화를 이루는 무대를 펼쳐보고 싶다”며 “내년 2월께 단독 공연을 펼치려 하니 많은 성원을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이 앨범엔 사실 히든 트랙이 존재한다. CD엔 포함돼 있지 않다. 히든트랙의 문을 여는 단서는 앨범 크레디트에 있다. 헤르쯔 아날로그의 홈페이지(http://herzanalog.tumblr.com/) 주소 뒤에 헤르쯔 아날로그가 믹스에 참여한 트랙의 숫자를 차례로 나열해 입력하면 히든 트랙과 만날 수 있다. 그는 “앨범에 독특한 재미를 주고 싶었다”며 “히든트랙이 실은 하나 더 있는데 밝히지 않겠다. 쉬우면 재미 없지 않나? 알아서 찾아보시라”고 익살을 더했다.

123@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