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을방학 1집의 밝음이 참 좋았다. ('이브나' 같은 곡은 제외하고...)
그런데 2집의 다채로운 감정선이 더 마음에 든다. 1집의 밝음이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달까..
나는 인터뷰에서 어떻게든 인터뷰이를 웃겨보려고 시도하는데(안 되면 술을 같이 먹어서라도 웃기거나) 이번엔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이들은 음악처럼 차분했다.
담백하게 다가오는 선율, 더 섬세해진 노랫말까지…
“언뜻 들으면 1집과 닮은꼴? 이번엔 앨범 전과정 주도”
어쿠스틱 듀오 ‘가을방학’의 음악은 모르는 사이 옷을 적시는 가랑비처럼 대수롭지 않게 다가와 가슴으로 스며드는 음악이다. 일상의 기쁨과 슬픔, 예고 없이 들이닥치는 다양한 감정들을 과장 없이 탁월한 내러티브로 담아낸 가을방학의 음악은 담백해서 오히려 사무치는 목소리에 실려 많은 이들에게 긴 여운을 남겼다. 뜨거운 만큼 빨리 식어버리는 현재 음악시장에서 가을방학은 별다른 홍보 없이 2010년 가을에 발매한 첫 정규앨범의 판매고를 2만여장이나 올렸다. ‘취미는 사랑’ ‘가끔 미치도록 네가 안고 싶어질 때가 있어’ ‘이브나’ 등 앨범 수록곡들이 골고루 계절을 타는 일 없이 라디오 신청곡으로 사랑받았다. 좋은 음악의 힘을 보여준 멋진 사건이었다. 가을방학이 지난 8일 2년 반 만에 두 번째 정규앨범 ‘선명’을 발표했다. 겨우내 천천히 자란 봄동이 달고 맛있듯, 가을방학의 새 앨범은 꽃 피는 4월에도 맛있다. 가을방학의 멤버 정바비(작사ㆍ작곡)와 계피(보컬)를 서울 상수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앨범의 타이틀을 ‘선명’으로 정한 이유에 대해 계피는 “데모곡들을 하나 하나 듣다가 문득 곡들이 저마다 스타일은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1집보다 감정선이 뚜렷하고 직설적이란 느낌을 받았다”며 “이 앨범을 계기로 전업 뮤지션으로 진로를 확정하는 등 향후 팀의 행보도 선명해졌다는 것도 이유라면 이유”라고 밝혔다.
앨범엔 일상의 낙천을 기분 좋게 그려낸 ‘좋은 아침이야, 점심을 먹자’, 홀로 믿는 사랑에 대한 안타까움을 노래한 ‘헛것’, 2009년 데뷔 싱글을 새롭게 편곡한 ‘3월의 마른 모래’, 오래된 커플들을 위한 응원가 ‘편애’, 반려동물을 향한 애틋한 마음을 담은 ‘언젠가 너로 인해’, 이성복 시인의 시 ‘편지’에서 영감을 얻어 이별의 우울을 가감없이 처연하게 표현한 ‘잘 있지 말아요’, 소중한 이의 부재로 인한 격정을 담담하게 노래해 더욱 가슴을 아리게 하는 ‘더운 피’, 아이들의 미묘한 관계와 감정을 보여주는 내레이션이 인상적인 ‘삼아일산’ 등 12곡이 담겨 있다. 관조하는 시선을 유지했던 1집의 가사와는 달리 2집은 대상을 조금 더 끌어당겨 바라봄으로써 섬세함을 더했다.
두 번째 정규앨범 ‘선명’ 을 발표한 어쿠스틱 듀오 가을방학. 왼쪽부터 정바비(송라이팅), 계 피 (보컬). [사진제공=루오바팩토리] |
무심코 흘려들으면 1집과 닮은꼴이지만 그 안에 깃든 변화의 과정은 적지 않다. 정바비는 “프로듀서가 정한 기획에 맞춰갔던 1집과는 달리 2집에선 우리가 앨범 제작 전 과정을 주도했다는 점이 큰 차이”라며 “계피가 이해하고 몰입해 부를 수 있는 곡들을 중심으로 앨범을 꾸렸다”고 말했다. 계피는 “노래는 신에게 안녕을 기원하는 제의(祭儀)에서 비롯됐기 때문에,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그 노래의 영향을 받게 마련”이라며 “전체적으로 밝은 톤이었던 1집과는 달리 2집에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다양한 톤의 곡을 조금 더 진실에 가깝게 노래하려 노력했다”고 덧붙였다.
가을방학의 음악이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이유에 대해 정바비는 “장르를 떠나 가을방학이 추구하는 음악은 이지 리스닝(Easy Listeningㆍ부담 없이 들을 수 있는 음악의 총칭)”이라며 “과도하게 자의식을 곡에 담지 않고, 내 생각을 강요하지 않는 것이 청자에게 편안함을 주는 것 같다”고 답했다.
가을방학은 다음달 31일 서울 공연을 시작으로 대구, 부산, 광주, 대전 등을 돌며 전국 투어를 펼칠 예정이다. 이에 앞서 28일엔 경기 고양시 아람누리에서 열리는 ‘뷰티풀 민트 라이프 2013’의 무대에도 오른다. 6월엔 일본에서 앨범을 발매하고 도쿄와 오사카에서 쇼케이스를 갖는다.
앞으로의 음악적 계획을 묻자 정바비는 “지난해 일본에서 비치보이스 결성 50주년 기념 공연을 관람했는데 70살이 넘은 멤버들이 무대에서 무려 40여 곡을 소화하는 모습을 보고 감명받았다”며 “가을방학도 꾸준히 앨범을 발표해 공연에서 선보일 수 있는 좋은 노래가 많이 쌓였으면 좋겠다. 우리의 음악을 통해 많은 이들의 마음이 선명해지길 소망한다”고 전했다.
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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