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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 2일 템플스테이) 108배 … 참선 … 명상? 그냥 편히 쉬었다 가시지요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10. 5. 27.

http://www.cc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549570

 

 

 

 

 

 

봄은 첫사랑 같다. 봄은 존재하나 분명치 않음으로써 그립다. 차창 밖 들판의 봄은 여름을 닮아있고 야산의 봄은 겨울을 닮아있다. 봄은 잡힐 듯 잡히지 않고 보일 듯 보이지 않는 신기루다. 머금었던 꽃비를 쏟아낸 벚나무의 가지는 봄의 종결어미다. 시작하는 듯 끝나버리는 봄은 그래서 늘 아련하다. 지장정사로 향하는 좁은 자동차 안의 기온은 내 체온과 봄볕의 온기를 더한 숫자다. 창문을 열어 버티기에는 덥고 에어컨으로 떨치기에는 새치름해 애가 탔다. 나는 올해 꽃비의 절정을 보지 못했다. 내년에는 볼 수 있을까? 지장정사는 공주와 논산의 경계선에서 인연을 기다리고 있다.


- 12:40 - 첫만남: 인연은 신의 축복

   
트위터(Tweeter)를 통해 인연을 맺은 네명의 사람들과 나, 1박 2일 동안 템플스테이 체험을 할 다섯 사람 앞에 법원스님과 법사 한 분이 자리했다. 10명 안팎으로 예정돼있던 체험단의 규모는 이런저런 이유로 오지 못한 이들로 조촐했다. 스님과 법사님이 체험자 일행을 숙소로 안내했다. 첫 만남은 늘 어색하다. 모두 말없이 뒤를 따랐다. 나는 어색한 뒤따름 속에서 '코스모스'의 저자 칼 세이건 박사가 남긴 말을 떠올렸다.

"당신과의 만남은 신의 축복이다. 수십억, 수백 년의 우주시간 속에 바로 지금, 그리고 무한한 우주속의 같은 은하계, 같은 태양계, 같은 행성, 같은 나라, 그리고 같은 장소에서 당신을 만난 것은 1조에 1조배를 곱하고 다시 10억을 곱한 확률보다도 작은 우연이기 때문이다."

- 13:00 - 몸 풀기: 고통을 숙련하는 요가

   
숙소 안에서 일행을 가장 먼저 맞아준 것은 제비 한 마리였다. 나갈 길을 몰라 애타게 유리창을 부리로 더듬는 제비 한 마리는 도시민들에게 있어 그 자체로 경이롭다. 창문을 열어 제비를 돌려보낸 일행은 법사로부터 앞으로의 일정에 대한 안내를 들었다. 휴대폰, MP3 등 전자기기... 템플스테이의 반입 금지 품목 중 일부다. 지난 밤 나는 휴대폰을 분실했다. 찾는 데 실패한 나는 분실 신고 후 불편한 마음을 안고 지장정사로 향해야했다. 문득 이 같은 일이 삿된 것을 버리고 오라는 부처님의 안배 아니었느냐는 생각에 잠시 고개를 숙였다.

템플스테이의 애피타이저는 요가를 통한 몸 풀기였다. 동작마다 내 몸에 거슬리지 않는 것이 없다. 관절 마디마디가 아우성친다. 담당 강사는 쌓인 스트레스와 고민의 양에 고통이 비례한다고 말했다. 내 몸의 관절과 근육에 끼인 녹이 너무 많은가 보다. 동작이 반복됨에 따라 고통은 덜해졌지만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다.

- 15:00 - 오솔길: 2시간 코스 봄을 걷다

담당 법사가 체험단을 이끌고 산책에 나섰다. 높지 않은 절 뒤편 야산을 타고 마을을 돌아 나와 다시 절로 향하는 2시간 안팎의 코스다. 아직 채 삭지 않은 낙엽들이 발아래서 바스락거린다. 기온에 관계없이 볕의 혜택이 적은 야산의 오솔길은 아직 겨울이다. 봄을 증명하기엔 들꽃이 적었고 여름을 증명하기엔 초록이 적었다. 그러나 발목까지 파묻히는 낙엽의 깊이는 신선한 감각이다. 발바닥이 닿으면 등을 타고 어깨까지 진동하는 도심의 포장도로. 그 진동은 살아있는 것들을 덮어버린 포장도로의 무심함과 닮아있어 아리다. 오랜만에 살아있는 길을 걷는 이들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하다. 야산 꼭대기서 법사가 체험단에게 간식거리를 건넸다. 삶은 감자와 쑥튀김. 튀김옷 아래에 깃든 쑥은 엷은 씁쓸함으로 입맛을 돋우고 삶은 감자에 스며든 단맛을 이끈다. 체험단은 연신 맛있다는 감탄과 함께 소박한 간식거리로 손을 뻗었다. 하산하는 길에서 발목은 낙엽 아래 더 깊이 파묻혔다. 낙엽은 부서지는 소리로 발을 감싸며 괜찮다고 말한다. 산 아래로 향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환하다. 길은 걷는 이들을 닮아있다.

- 17:00 - 발우공양: 맛난 저녁식사

   
절의 저녁공양은 이른 편이다. 체험단에게 보자기로 매듭지어진 발우가 하나씩 주어졌다. 발우(鉢盂)의 발(鉢)은 범어로 수행자에 합당한 크기의 그릇이란 의미며, 우(盂)는 밥그릇을 의미하는 한자다. 발우는 포개어지는 네 그릇으로 구성돼 있는데 큰 순서대로 어시발우, 국발우, 청수발우, 찬발우로 불린다. 포개진 모습이 마치 러시아 민속인형 마뜨료쉬카 같다. 어시발우에는 밥이, 청수발우에는 깨끗한 물이, 국발우에는 국이, 찬발우에는 반찬이 담긴다. 어시발우는 무릎 왼쪽 바로 앞에, 국발우는 오른쪽 앞에 놓인다. 찬발우는 어시발우 바로 앞에 청수발우는 국발우 바로 앞에 놓는다. 공양에 있어서 지켜야 할 법칙 몇 가지가 있다. 첫째, 절대 음식을 남기지 않는다. 둘째, 밥을 국에 말아먹거나 반찬을 밥 위에 올려두고 먹지 않는다. 셋째, 발우로 입을 가리고 먹는다.

그러나 공양 시간의 고요함보다 인상적인 것은 발우를 정리하는 일이다. 공양에서 유일하게 남기는 음식은 단무지 한 조각 혹은 김치 한 조각이다. 이는 발우를 닦는 용도로 쓰인다. 공양을 마치면 어시발우에 뜨거운 숭늉이 담긴다. 입가심으로 반 남짓 마신 뒤 본격적인 설거지가 시작된다. 먼저 단무지로 숭늉에 불은 밥찌꺼기를 닦는다. 이어 숭늉과 단무지를 국발우로, 국발우에서 찬발우로 옮겨 담으며 같은 과정을 반복한 뒤 남은 숭늉을 마셔 비운다. 마지막으로 청수발우에 담긴 물을 어시발우, 국발우, 찬발우로 옮겨 담으며 헹구기를 반복한 뒤 그 물을 모두 마셔 비운 후 보자기로 발우를 닦는다. 그때서야 비로소 공양이 끝난다.

간혹 비위가 상해 이 같은 절차를 거부하는 체험자들도 있다고 한다. 나는 모르겠다. 먹지 못할 만큼 덜어와 지저분하게 남겨 버리는 일이 비위 상하는 일인지, 이 같은 발우공양이 비위 상하는 일인지... 반년 남짓 절에서 기거한 경험이 있는 나는 그곳에서 남은 음식을 버리는 '짬통'을 본 일이 없다. '쓰레기통'도 없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먹을 만큼만 감사히 먹었고 버릴 것을 애초에 만들지도 않았다. 나는 무엇이 비위 상하는 일인지 모르겠다.

- 18:00 - 타종 및 저녁예불: 108배 올리다

저녁 예불 전 타종체험이 있었다. 체험단은 종각 주위를 도는 스님의 뒤를 따르며 합장했다. 스님이 먼저 타종했다. 이어 체험단이 차례로 타종했다. 종이 울린다. 울림의 모양은 타원형의 연속이다. 좁고 넓음을 반복하며 대지와 산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하루의 끝을 알린다. 산은 타종과 더불어 비로소 저문다. 산그늘이 서며 조금씩 절을 물들인다.

법당 안은 향내로 자욱했다. 불단 오른쪽 옆으로 십 수 명의 영정이 놓여있다. 49재의 흔적이다. 누군가의 아버지요 어머니, 아들이자 딸이었던 사람들이 향 연기 너머로 체험단을 바라본다. 어머니의 49재를 절에서 치렀던 나 역시 낯설지 않은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향내가 짙어진다. 짙은 향내는 가슴 그을린 냄새와 닮아있다.

체험단은 스님과 함께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을 암송했다. 알아들을 수 없는 가르침은 무력하다. 그런 점에서 부모의 은덕을 되돌아보는 친숙한 내용을 가진 경의 번역본을 암송하는 일은 체험단의 눈높이를 맞춘 의미 있는 경험이다.

그러나 몸으로 얻은 배움은 읽어서 얻는 배움에 비해 쉽게 잊히지 않는 법이다. 체험단은 2패로 나뉘어 서로에게 108배를 해보는 체험을 가졌다. 처음 20배까지는 별다른 느낌 없이 어색하지만 그 이후부터는 몸이 의식을 지배한다. 몸에서 뇌로 향하는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신호만이 머릿속을 채운다. 그러나 100번에 가까워지면 묘한 기운에 사로잡힌다. 놀랍게도 앞에 있는 사람이 오늘 처음 본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존귀한 존재인 것 같은 감정에 빠지게 된다. 이는 반대로 108배를 받을 때도 마찬가지다.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절을 받는 어색함도 잠시, 종내에는 내가 저들에게 진심으로 무언가를 해줘야 할 것만 같은 생각에 놀라게 된다. 나는 살아서 한 사람에게 이토록 많은 절을 해본 일도, 이렇게 많은 절을 받아본 일도 없다. 특별한 경험이었다. 실제로 108배 체험을 통해 잃었던 금슬을 되찾은 부부, 사랑을 되찾은 가족이 많다고 한다. 늘 처음처럼 상대를 향한 소중한 감정을 가지며 살 수는 없다. 그런 감정이 엷어질 때쯤 이런 경험을 통해 그 마음을 회복해보는 기회를 가지는 것도 좋지 않을까?

- 21:00  별빛보며 봉사의 의미 되새기다

저녁예불을 마치고 나오자 세상은 먹빛이다. 오랜만에 북두칠성을 볼 수 있었다. 안력을 돋우자 이름 모를 별들이 하나하나 눈에 들어온다. 풀벌레 하나 울지 않는 절 주변을 채우는 것은 바람 소리다. 주변에 마을하나 없는 절은 고요함으로써 존재감을 드러낸다.

체험단은 법원스님과 함께 차 마시는 시간을 가졌다. 108배를 통해 느낀 심적인 변화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 이런 저런 이야기가 오갔다. 많은 이야기 속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초아(超我)의 봉사에 대한 이야기였다. 지장정사는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에 학교를 세우고 오랫동안 무료급식 봉사를 해왔다. 국내에도 어려운 이들이 많은 데 왜 멀리까지 가서 도와줘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스님은 아무도 그곳에서 봉사하지 않고 있어서 자신들이라도 봉사하려 한다는 말로 이유를 대신했다.

남에 대한 연민은 나에 대한 연민이요, 남은 나로부터 말미암고 나는 남으로부터 말미암는다는 의미로 나는 스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 봉사는 물리적 거리에 대한 개념을 초월한 아름다운 실천임을.

- 22:30 취침전 얘기꽃으로 자정넘어

배정된 숙소로 돌아온 체험단은 취침을 위해 이부자리를 폈다. 다들 108배 체험이 인상적이었나 보다. 각종 체험으로 인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은 취침 시간을 기꺼이 반납했다. 기상 시간은 새벽 4시 30분이다. 일어나 간단히 세면 후 새벽예불을 드려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 이런 저런 이야기에 시간은 자정을 넘겼다. 가뜩이나 적은 취침시간이 더 줄어들고 말았다. 할 말은 많은데 잠들어야만 하는 밤이 야속하다.

- 04:30 목탁소리에 새벽도 깨어나다

   

절의 하루는 이른 새벽부터 시작된다. 체험단의 기상 전부터 이미 새벽예불은 한창이다. 지난밤 많은 이야기로 수면을 제대로 취하지 못한 체험단은 뻐근한 몸을 이끌고 새벽예불이 벌어지는 법당으로 향했다. 새벽 타종 소리가 들린다. 종소리는 가늠할 수 없는 위엄으로 잠든 세상을 깨우며 어둠을 밀어낸다. 희미한 먼 산 윤곽 너머로 사래기 빛이 파르스름하다. 종소리를 따라 별들이 흩어져 간다.

새벽예불시간에도 108배 체험이 기다리고 있다. 자신을 위한 108배. 나는 오래전에 읽었던 마스타니 후미오의 '아함경'속의 한 이야기를 생각했다. 코살라국의 왕 파세나디가 왕비와 함께 누각에 올라 세상을 바라보며 하는 나누었던 대화를. 파세나디는 "세상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나만큼 소중한 것을 찾지 못했다"고 왕비에게 말한다. 그러자 왕비역시 자신도 그렇다며 동의한다. 파세나디의 이러한 고백에 붓다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자신이며, 다른 존재들 역시 자신을 가장 소중하게 여긴다는 것도 알라"는 가르침을 남긴다. 여태껏 나는 나를 소중히 여기고 살아왔는가? 관자놀이를 타고 흐르는 땀이 목탁소리에 실려 신새벽을 가른다.

- 06:30 산책하며 즐긴 초록빛 봄햇살

   
▲ 나란히 줄지어 걷는 오솔길. 길은 걷는 이들을 닮아 유순하다.

새벽예불을 마치고 나오자 공복감이 생생하다. 재촉하지 않아도 기어코 찾아오는 아침 또한 오늘따라 더 생생하다. 공양간으로 향하는 체험단의 발길이 빨라진다. 이른 저녁을 마친 후 밤새 아무 것도 먹지 못한 채 108배를 한 체험단에게 있어 아침공양은 꿀맛이요 청수는 감로수다.

공양을 마친 체험단은 아침 산책을 나섰다. 햇살과 바람이 이슬을 털어내기 전 촉촉하게 물기 머금은 산의 아침공기는 싱그럽다. 허파에 새살이 돋는 것 같다는 나의 농담에 웃음소리가 커진다. “착한 벗이 있고 착한 동지와 함께 있다는 것은 성스러운 길의 전부”라던 아함경 속 붓다의 가르침이 귀를 간질인다.

야산에서 가장 전망 좋은 곳은 무덤가다. 볕이 잘 드는 무덤 주변은 이미 봄이 익어있다. 주변에 늘어선 왕벚과 박태기나무가 꽃을 피웠다. 앙상한 벚나무 가지 끄트머리에 매달린 하얀 꽃 한 송이가 어설프다. 보랏빛 제비꽃이 엷게 봉분가에 스며있다. 이름 모를 새들이 저마다 알아듣기 힘든 방언을 지껄인다. 체험단은 풀 위에 앉아 아래를 굽어보았다. 저 멀리 수많은 길들이 모세혈관처럼 얽혀있다. 저 길 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피고 지었겠지. 이른 아침인데 햇살이 따갑다. 봄이 맞다.

- 8:30 '여름같은' 하우스서 딸기농장체험

이른 기상은 하루를 길게 만들어 준다. 해뜨기 전부터 시작되는 일상에 익숙지 않은 체험단은 많은 체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아침이라며 놀라워했다. 체험단은 딸기농장체험을 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딸기로 이름난 논산은 그 유명세답게 하우스마다 딸기 단내로 가득하다. 딸기는 이른 아침에 따야 한다. 오전 10시만 넘어가도 하우스 안은 높은 습도와 온도로 인해 버티기 어려워진다. 9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간임에도 불구, 하우스 안은 여름이다.

"딸기는 장미과"라는 농장주인의 말에 놀란 것도 잠시, 갓 딴 딸기의 달콤함은 표현할만한 형용사가 마땅치 않다. 무농약재배를 증명이라도 하듯 딸기꽃 사이사이마다 씀바귀, 토끼풀, 주름잎, 냉이 등 야생초가 터를 잡았다. 이들에게 기꺼이 곁을 내준 딸기와 농부의 너그러움에 미소가 번진다.

- 10:00 - 흙의 감촉 느끼며 도자체험

템플스테이의 마지막 일정은 도자 체험이었다. 근 20년 만에 느껴보는 흙의 감촉. 내 손안에서 떡처럼 찰진 흙이 뭉쳐진다. 무언가를 만들어 보겠다는 체험단의 눈매가 진지하다. 물레를 돌리며 흙을 빚는 영화 속 장면의 낭만은 없어도 도자체험은 즐겁다. 처음 생각과는 전혀 다른 모양으로 빚어지는 흙을 바라보며 진지했던 표정은 너털웃음으로 변해간다. 술잔을 빚으려던 나는 술병을 만들고 말았다. 그야말로 멋대로 만들어진 작품을 보니 흙에게 미안해진다. 서로 자신의 결과물이 민망한지 농담과 웃음으로 민망함을 덮는다. 농담은 그렇게 서로간의 벽을 조금씩 허물며 거리를 좁힌다.

2시간여 가까이 흐른 뒤 탁자 위에 다섯 개의 완성품이 늘어섰다. 술잔 넷과 술병 하나. 결과물만 보아도 만든 이의 성품이 보인다. 나를 제외한 나머지의 완성품에서 꼼꼼함이 묻어난다. 아무리 봐도 내 작품이 가장 못났다. 나는 술병도 하나 만들어졌으니 다음에 만나면 이 녀석들로 한 잔하자는 말로 부끄러움을 덮었다. 완성품은 약 3달 후에 나온단다. 응달에 말리고 가마에서 구워지기까지 걸리는 시간이다. 예술 작품이라 불리는 자기도, 이 빠진 사기 밥그릇도 같은 시간과 열기를 견뎌야 한다. 높은 자나 낮은 자나 날 때는 모태에서 똑같이 10달을 견뎌야 하듯…

- 12:00 속세의 번뇌 떨쳐버리는 이별

벌써 이별의 시간이다. 아침에는 그렇게 더디게 가던 시간이 흙과 함께 하자 급류다. 다음 일정이 있는 나는 자리를 떠야했다. 아쉬운 마음과 다음 일정의 경계에서 잠시 주저했지만 나 같은 범인에게 있어서 선택은 늘 현실이다. 1박 2일의 짧은 인연은 트위터 상의 만남으로 이어가기로 하며 발길을 돌려야 했다.

내 작은 차안은 늘 고민의 공간이다. 나는 무엇을 템플스테이의 주제로 삼아야 하는가? 나는 마른 신문 지면에 무엇을 실어야 하는가? 내 머릿속 병든 문장들을 어떻게 덜고 덜어야 버석거리는 활자들 틈에 한 바가지 청수를 채울 수 있을까? 차창을 투과해 눈에 닿는 햇살이 하얗다. 접어두었던 기억들이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며 현기증을 일으킨다. 숨이 떨린다. 나는 몇 년 전 어느 마음 추운 봄 자정 무렵, 내 생애 최초의 템플스테이를 회상했다.

성과 속이 만나는 자리. 개방된 법당은 안온했다. 향을 사른다. 종교가 없어 예법을 모르는 나는 취할 수 있는 최대의 예법인 큰절로 부처를 맞았다. 대답 없는 수많은 질문들이 오갔다. 시간은 평소보다 몇 배의 속도로 달음질 쳤다. 어느새 새벽녘 푸른빛이 창틈에 기대어 섰다. 언젠가 읽었던 잠언집의 한 구절이 되살아나 눈가를 타고 흘렀다. '살아있는 것들은 다 행복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