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29살이었던 2008~2009년 무렵, 나는 청계천을 참으로 많이 싸돌아다녔다.
당시 나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나 홀로 문학청년'이었다.
2008년 말 나는 20대 초반에 쓴 장편소설 '발렌타인데이'를 별생각없이 한양대학보 문예상에 응모했다가 덜컥 대상에 당선됐다.
고시생이었던 나는 이후 약간 바람이 들어서 사법시험을 포기하고 정말 문인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장편소설 하나를 더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소설 쓰기가 뭐 간단한 일인가? 첫 장편소설도 3년 만에 완성했었는데? 그리고 내가 소설을 쓴다고 누가 알아준다는 보장이 있나? 또 나는 가사를 쓰다가 글을 쓰기 시작한 그야말로 야매 아닌가? 게다가 서른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당장 먹고 사는 일이 당면문제 아닌가?
그러나 나는 20대 중반과 후반 사이에 너무나 많은 것을 잃어버린 상황이었다. 내 처지는 그야말로 바닥이었고 뭔가 새로운 것으로 돌파구를 찾고 싶었다. 마지막 20대를 나는 머릿 속의 혼란을 가라앉히기 위해 수도 없이 청계천을 왕복했었다.
그로부터 5년이 흐른 2014년 현재..
혼란 속에서 쓴 두 번째 장편 '도화촌기행'은 뒤늦게 조선일보 판타지 문학상에 당선됐고, 나는 정말 작가가 됐다. 지금 나는 전업작가는 아니지만 기자로 글밥을 먹으며 살고 있다. 대단한 출세를 한 건 아니지만 어디에도 손 벌리지 않고 집을 얻었고 차를 몰고 밥도 벌어먹고 살고 있다. 나는 내 고민을 말없이 들어줬던 청계천에 꽤 많은 빚을 진 셈이다.
34번째 생일이었던 지난 5월 6일. 나는 5년 만에 다시 청계천을 걸었다.
삶에 특별히 문제는 없지만, 요즘 들어 자꾸 머릿속에서 무언가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문제는 내가 원하는 변화가 무엇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걸었다.
후암동 종점에서 바라본 남산타워.
후암동에서 202번 버스를 타면 상왕십리역까지 이동할 수 있다.
상왕십리역에서 내렸다.
나는 대학에 다니면서 참으로 많은 고시원과 쪽방을 전전했다. 창이 있는 곳과 없는 곳, 반지하부터 여름이면 푹푹찌는 곳 옥탑방 아래까지.. 그야말로 돈 없는 청춘들이 머무를 수밖에 없는 거의 모든 곳을 다 돌았다.
상왕십리역은 내가 마지막으로 살았던 고시원이 있는 곳이다.
3번 출구를 빠져나오면 바로 터널이 나온다.
이 터널을 올라가면?
내가 마지막으로 살았던 고시원이 나온다.
이 고시원은 그래도 시설이 나쁘지 않았다. 여름에 쪄죽는 건 마찬가지였지만...
상왕십리부터 왕십리까지 걸었다.
모교인 한양대 부근이 점점 낯설어질 정도로 쌔끈하게 변화하고 있다.
정문 근처에 또 뭔가 큰 의류매장이 생기려는 모양이다.
진짜 오랜만에 학교 앞에 와보네..
아카시아꽃이 핀 캠퍼스 앞.
본격적인 청계천 걷기는 여기 성동교에서 시작됐다.
성동교 옆 좁은 계단으로 내려가면..
강변을 따라 조깅과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과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여기는 청계천이 아니라 중랑천이다. 청계천은 더 올라가야 한다.
아... 살곶이 다리..
내 서울에 대한 본격적인 그리고 가난한 기억은 저 살곶이 다리에서 시작된다.
2002년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한양대에 입학한 나는 살곶이 다리 건너 뚝섬역 부근 고시원에서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캠퍼스와 떨어져 있었지만 고시원 월세가 쌌기 때문이다.
그리고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은 기억도 저절로 떠올라 씁쓸했다.
내 20대 거의 대부분의 기억이 한 여자와 연결돼 있는데, 그 여자는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용서할기 힘들 정도로 예의 없이 나를 떠났으니 말이다. 그 이후 솔로생활이 6년이 넘게 이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가끔은 정말 깨끗하게 기억들이 지워졌으면 좋겠다.
자전거도로변에 피어있던 괭이밥꽃.
그리 깨끗한 물이 흐르지 않다보니 물비린내가 확 느껴졌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살곶이다리.
이맘때면 흔하게 피는 금계국.
누가 여기다가 보리를 잔뜩 심어놓았구먼.
어여쁜 수레국화.
이건 양귀비 같은데...
물이 있는 곳에는 역시 붓꽃이 피어 있어야지.
파란 붓꽃도 노란 붓꽃 근처에 피어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엉겅퀴로 착각하는 지칭개.
엉겅퀴랑 많이 다르다. 언뜻보고 착각하면 안 된다.
중랑천과 청계천이 만나는 두물머리.
본격적인 청계천 걷기는 여기서 시작된다.
두물머리 위로 2호선 성수지선이 지나간다.
두물머리 부근에 설치된 어도.
봄에 흔한 들꽃 꽃마리.
꽃의 크기가 비비탄 지름도 안 되는 터라 초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겨우 찍었다.
역시 봄에 흔하디 흔한 들꽃 좀씀바귀.
냉이꽃이 진 자리에 삼각형 씨방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저 삼각형 씨방을 열면 모래알보다 작은 냉이 씨앗이 여럿 들어있다.
그늘에 피어있던 유채꽃.
어도에 물고기가 돌아다니나 싶어 살펴봤는데..
피래미 한 마리도 없었다.
어도에서 바라본 청계천.
이맘 때 역시 흔한 들꽃 개쇠스랑개비.
뭔가 점점 세련되게 리모델링을 거듭하는 모교의 건물들.
에이~ 의정부까지 어느 세월에 가나~
붉은 토끼풀 꽃.
여름이 오긴 오려나 보다. 찔레꽃이 잔뜩 피기 시작한 걸 보니 말이다.
장사익 선생님은 찔레꽃 향기가 슬프다는 절창을 남겼지만, 나는 찔레꽃 향기만큼 기품 있는 꽃향기가 드물다고 생각한다.
국민잡초~ 애기똥풀~
냉이 자라는 곳에 늘 같이 자라는 꽃다지.
휴일이라 낮부터 청계천변을 오가며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어익후~ 청계광장까지 7.5km나 남았네?
별생각없이 익모초인가보다 하면서 지나가는데 이파리를 보니 익모초가 아니었다.
아.. 왜 이름이 기억 안 나지? 진짜 한동안 꽃에 무심하게 살아왔구나.. 층층이꽃처럼 생기긴 했는데 꽃색깔이 다르고.. 으흠..
청계천이 시작되는 지점부터 용두역 부근까지는 이런 데크가 많이 마련돼 있다.
고시반에 살던 시절에 나는 여기에 앉아 기타를 치며 술을 많이 마셨었다.
데크에서 바라본 청계천.
밤에 데크에 앉아 술을 마시면 신선놀음하는 느낌이어서 꽤 기분이 좋다.
용답역 부근.
고시반에 있던 시절에 여기에서 참 많이 운동했었지.
다리를 하나 건너면 용답역이 바로 나온다.
용답역 부근에는 이곳저곳 술 먹을 곳이 많아 없는 돈으로 많이 취했었다.
담쟁이덩굴이 언제 저정도로 올라온 거지?
걷가보니 어느새 신답역이 보였다.
낚시 즐겁니 얘들아?
그나저나 청계천에서 애들을 데리고 견지대로 낚시질을 하시면 어쩝니까? 에효~
보이면 설레는 삼각지붕 홈플러스.
마트 식품 코너를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다보니 저 동대문 홈플러스 시식코너를 참 많이 돌아다녔다.
내 아무리 동물을 좋아한다지만 이 겁도 없는 오리녀석들 같으니!
나를 전혀 신경쓰지 않는 오리의 쿨함에 할 말을 잃었다.
올해 들어 처음 만난 괴불주머니.
오호라~ 인동초도 피었네?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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