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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기387

정은경·이동은·오세연 『여름을 달려 너에게 점프!』(안전가옥) 영화계 출신 소설가들이 많아졌다. 장편소설 『고래』를 쓴 천명관 작가, 『아몬드』를 쓴 손원평 작가, 『불편한 편의점』을 쓴 김호연 작가, 『급류』를 쓴 정대건 작가, 『미러볼 아래서』를 쓴 강진아 작가 등 당장 떠오르는 이름만 헤아려 봐도 손가락이 모자란다. 서사가 분명하게 드러나고 영상이 눈앞에 바로 떠오른다는 점에서 영화계 출신 소설가들이 쓴 작품을 좋아한다. 이 앤솔로지는 참여 작가 모두가 영화감독 출신이라는 점에서 독특하다. 영화감독 출신 작가의 작품만을 모은 앤솔로지는 아마도 이 책이 처음이 아닌가 싶다. 정은경 감독이 쓴 「두근두근 꾸륵꾸륵」은 90년대를 배경으로 10대 고등학생 소녀 탁구 선수들을 등장인물로로 내세워 그 시절 사랑의 복잡미묘한 감정을 섬세하게 다룬다. 88올림픽, 드라마 「.. 2024. 8. 18.
김설아 외 4인 『환상의 댄스 배틀』(책담) 춤에는 젬병이다. 내 기억 속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췄던 춤은 대학교 신입생 시절에 뭣도 모르고 운동권 선배들 손에 이끌려 꽃다지의 노래 '바위처럼'에 맞춰 따라 했던 율동이다. 율동을 따라 할 때 무척 부끄러웠던 기억이 난다. 그 시절에 오락실에서 DDR이나 펌프가 대단한 인기를 끌었는데, 쳐다보지도 않았음은 물론이다. 최근에 '스우파'가 화제를 모았을 때도 별 감흥이 없었다. 그래도 궁금하긴 했다. 도대체 무슨 매력 때문에 춤에 열광하는 사람이 많은지 말이다. 이 앤솔로지는 춤 좀 춰봤다는 작가 다섯 명이 쓴 단편소설을 모았다. 다섯 단편 모두 현재의 고민과 결핍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춤을 내세운다는 점은 같지만, 저마다 다른 배경을 가진 작가들이 쓴 작품인 만큼 이야기가 다채롭다. 피아노 연주자를 꿈꾸.. 2024. 8. 18.
박재영 산문집 <K를 팝니다>(난다) 송나라 사신 서긍이 쓴 『고려도경』은 당대 고려의 모습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사료이지만, 왕실 계보 서술이 엉망이고 고구려와 고려의 역사가 뒤섞여있는 등 오류가 적지 않다. 외국인이 외국인의 시각으로 쓴 책의 한계다. 오류 없이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전달할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가 직접 외국의 언어로 우리를 설명하는 방법일 테다. 몰랐다. 외국인을 대상으로 출판된 한국 여행 관련 서적 중에 한국인이 쓴 책이 지금까지 단 한 권도 없었다는 사실을. 이 산문집은 '네이티브 코리안'이 외국인 독자를 대상으로 두고 영어로 쓴 첫 번째 한국 여행 서적이다. 어처구니없긴 한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왜 그런지 조금은 이해가 된다. 한국 작가 중에 유창한 영어 문장으로 책을 쓸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2024. 8. 5.
박서련 장편소설 『폐월; 초선전』(은행나무)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여러 캐릭터 중 분량에 비해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캐릭터는 '초선' 아닐까. 초선이 동탁과 여포 사이를 이간질하는 판짜기가 없었다면, 『삼국지연의』는 꽤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 테다. 초선은 남성 호르몬으로 가득 찬 『삼국지연의』의 초반을 주도하는 여성 캐릭터이지만, 이후 행적은 캐릭터의 무게감에 맞지 않게 묘연하다. 박서련 작가는 한국 문학계에서 가장 부지런한 작가다. 등단한 지 10년이 안 됐는데, 그사이에 내놓은 단행본 수가 10개가 넘는다. 무시무시한 생산력이다. 그만큼 쓸 이야기도 많고, 관심사도 다양하다는 방증이다. 작가가 메가 임팩트만 남기고 빠르게 『삼국지연의』에서 퇴장한 초선에 주목한 건 우연이 아닐 테다.  『삼국지연의』에서 초선은 사도 왕윤의 명을 받아 연환계.. 2024. 7.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