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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기337

김지은 산문집 <태도의 언어>(헤이북스) 인터뷰 기사 중에서 가장 깊이가 없고 읽을거리도 없는 기사는 일간지 인터뷰다. 그렇게 볼품 없는 인터뷰가 나오는 가장 큰 이유는 신문 지면의 한계 때문이다. 일간지 인터뷰 작성은 지면에 싣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 때문에 기자가 욕심을 부려 긴 인터뷰를 쓰고 싶어도 쓸 수가 없다. 또 다른 이유는 기자의 업무 특성 때문이다. 기자는 늘 바쁘고 마감에 시달린다. 오래 기자로 일하다 보면, 기사가 되는 '야마' 뽑기에만 집중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상대방의 감정을 헤아리는 데 무심해진다. 마치 소시오패스처럼 말이다. 내 경험상 기자 중에는 소시오패스 성향인 사람이 꽤 많다. 그렇지 않으면 오래 일하기 어려운 구조이고, 그렇게 일해야 성공하기가 좋다. 그런 태도를 유지하며 살아가면, 마지막에 과연 무엇이.. 2024. 4. 6.
강헌 평전 <신해철>(돌베개) 소싯적에 열광적으로 마왕을 좋아했기 때문에 나는 그에 관해 많이 안다고 자부해왔다. 이 책을 읽어보니 내가 마왕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 건 맞는데, 오해하는 부분도 적지 않았다. 이 책을 통해 만난 마왕은 내 생각보다 훨씬 섬세하고 겸손하며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마왕이 밴드라는 포맷에 엄청나게 집착했다는 사실에 관해 처음 알게 됐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사실 나는 마왕이 굳이 밴드를 안 해도 되는데, 보여주기 위해 밴드라는 포맷을 자신의 도구로 이용하지 않았나 조금 의심했었다. 반성한다. 그는 진짜 밴드를 하고 싶어 했다. 다만 리더로는 그리 잘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던 듯하다. 저자의 지나치게 사적인 서술은 이 책이 마왕의 평전인지 일기인지 분간하지 못하게 만들지만, 그래서 더 좋은 점도 있었다. 특.. 2024. 4. 5.
장강명 산문 <미세 좌절의 시대>(문학동네) 꽤 많은 글이 구면이어서 반가웠다. 가장 공감하며 읽은 글은 '제정신으로 살기 위하여', '불편함이 도덕의 근거가 될 때', '나는 왜 보수주의자인가', '대한민국 주류 교체와 두 파산', '저출생 대책을 넘어서' 등이었다. 작가는 편을 가르는 선동만 넘쳐나는 현상에 관해 우려하고, 우리 사회에 도덕적 감수성이나 공감 능력보다 합리적 이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하며, 반대 진영을 제거 대상으로 보는 극단적인 시각을 경계한다. 보수를 현실주의라고 보는 작가의 시각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읽고 "맞아 맞아!"라며 동의하는 독자도 많고, 불편함을 느낄 독자도 많을 것이다. 특히 후자는 뭔가 반박하고 싶긴 한데, 논리적으로 반박할 게 마땅치 않아서 식식대지 않을까 싶다. 상식적인 시각으로 상식적인 논리를 담.. 2024. 4. 5.
최하나 장편소설 <반짝반짝 샛별야학>(나무옆의자) 인생의 황혼에 들어선 뒤에야 다시 공부를 시작한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나는 배우고 싶었는데도 배우지 못한 사람의 한스러운 마음을 조금은 안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그랬으니까. 어머니는 생전에 내게 자주 국민학교 밖에 나오지 못한 자신의 처지를 한탄했다. 어머니가 만약 살아계셨다면 올해 66살(한국 나이)이었을 텐데, 공교롭게도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할머니들의 나이와 비슷하다. 할머니들을 어머니라고 생각하면서 소설을 읽으니 몰입감이 높았다. 뒤늦게 배움의 길에 들어선 할머니들이 등장하는 소설이라면 뭔가 감동적이고 따뜻한 이야기가 펼쳐질 것 같지 않은가. 그런데 나는 이 작품이 마냥 감동적이거나 따뜻한 작품이 아니라서 좋았다. 소설 속에 펼쳐지는 갈등이 날것의 느낌을 줘서 실감 났다. 연장자의.. 2024.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