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417 김지연 소설집 『조금 망한 사랑』(문학동네) 표제작에서 소설집의 제목을 따오는 경우가 많은데, 이 소설집은 따로 지은 제목을 달고 있어서 신선했다. 『조금 망한 사랑』보다는 『조금 망한 인생』이라는 제목이 더 낫지 않았을까. 뒤늦게 다시 펼쳐 끝까지 읽고 난 뒤 떠오른 생각이다. 하지만 『조금 망한 인생』이었다면 이 소설집의 인상이 꽤 달라졌겠지. 그래. 『조금 망한 사랑』이 낫겠다. 수록작 중 「반려빚」이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다. 이 소설집 속 등장인물은 대체로 돈 때문에 곤란한 상황에 놓여 있다. 산재에 교통사고에 전세사기에 자연재해까지... 그중에서도 「반려빚」이 가장 노골적이다. 가깝고 친밀한 사이에서 벌어지는 금전 문제와 여기에 얽히고설킨 감정 문제를 엮어서 풀어내는 방식이 능청스럽다. 제목부터 '반려'에 '빚'을 더한 조어다. 어울리지.. 2025. 6. 17. 천선란 소설집 『모우어』(문학동네) 표지처럼 따뜻하면서도 몽환적이다.서사보다는 이미지가 강렬하다.작가의 전작과 비교해 난해해서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작가의 모든 작품을 통틀어 가독성이 가장 떨어진다.그러다 보니 처지는 기분이 들어 후반부에는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대신 이미지만 느끼며 스쳐 지나갔다.그래도 보물은 있다.염장이 안드로이드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뼈의 기록」이 그런 작품이었다.인간이 아닌 존재가 인간보다 더 인간다워 보이는 연출은 흔하긴 해도 가슴을 치는 무언가가 있다.안드로이드가 생전에 친분을 나눴던 장례식장 청소부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염을 치르는 모습을 볼 때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사람은 저마다 살아온 삶을 통해 다른 뼈 모양을 가지게 되며, 인간이 생을 다할 때까지 성장하고 변형된다는 메시지가 뒤통수를 쳤다... 2025. 6. 16. 윤대주 장편소설 『사물의 메시아』(문학수첩) 맷돌, 서까래, 선글라스, 소금 항아리, 피아노... 이 작품 속 모든 사물은 영혼을 가지고 있고, 마치 인간처럼 사고한다. 마치 범신론을 소설로 읽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고 이 작품 속 사물이 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 속 장난감처럼 사람이 보지 않을 때 움직이는 존재는 아니다. 이 작품 속 사물은 움직일 수 없고, 일부 특별한 인간만 사물과 소통할 수 있을 뿐이다. 겉보기엔 우리가 사는 세상과 다를 게 없다. 다만 한 가지 중요한 규칙이 있다. 사물은 결코 인간사에 개입해선 안 된다. 이를 어기면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될지 모른다. 불탄 집에서 겨우 형태를 유지한 채 발견된 목재가 있다. 기억을 잃은 채 발견된 목재는 새로운 집의 기둥으로 만들어지는데, 그곳에서 자신의 과거를 아는 맷돌을 만나 자기.. 2025. 6. 8. 김의경 소설집 『두리안의 맛』(은행나무) 이 소설집을 읽고 이런저런 문장을 주저리주저리 쓰다가 모두 지웠다. 그 어떤 해설도 사족인 소설집이다. 읽는 내내 고용노동부 출입 기자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을 느꼈다. 오랜만에 기자 흉내를 내보겠다. 대한민국 보통 청년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기획 기사 작성 때문에 통계에 익숙한 편이다. 통계를 살피면 디테일한 부분은 놓칠지 몰라도. 대략적인 윤곽 정도는 그릴 순 있다.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을 이해하기 위한 좋은 방법의 하나는 돈의 흐름을 살피는 거다. 대한민국 보통 청년의 모습을 살피려면 그들이 어떻게 먹고사는지 통계를 살피면 된다. 2024년 기준 대한민국 전체 기업 중 99%가 중소기업이다. 300인 미만 중소기업 취업자는 전체 취업자의 89.0%를 차지하고, 그들의 월 평균소득은 약 298만.. 2025. 6. 7. 이전 1 2 3 4 ··· 10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