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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기337

정승진 동화집 <늙은 개>(마루비) 첫 소설집과 새 장편소설 작업을 핑계로 읽기를 미루다가 뒤늦게 펼쳤다. 책을 덮을 때 든 기분은 착잡함과 서글픔 사이의 어딘가였다. 어렸을 때 읽었던 에서 수위를 살짝 낮추고 배경을 현재로 옮기면 이런 결과물이 나오지 않을까. 문득 오래전 어머니께서 헌책방에서 사 온 의 종이 삭은 냄새가 느껴졌다. 이 동화집은 다양한 동물(혹은 인간이 아닌 무언가)의 시선으로 민담, SF 등을 차용해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들여다본다. 나는 어렸을 때 쥐가 손톱을 먹으면 나로 변한다는 말을 들은 기억 때문에, 지금도 손톱을 아무 데나 버리지 않는다.  당연히 말도 안 되는 미신이지만 말이다.  그런데 만약 내 손톱을 먹은 쥐가 나로 변했다고 치자. 나로 변한 쥐는 나를 대신해 온전히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이 복잡한.. 2024. 4. 30.
김호연 장편소설 <나의 돈키호테>(나무옆의자) 김호연 작가는 데뷔작 를 비롯해 모든 장편소설을 따라 읽었을 정도로 좋아하는 작가다. 작가의 삶을 바라보는 긍정적인 자세와 재지 않는 문장에 스며들어 있는 온기를 사랑한다. 엄청나게 유명한 작가가 된 지금이든 덜 유명했던 과거에든, 여전히 나는 작가의 신작을 손꼽아 기다리는 독자다. 이번에도 온라인 서점에서 예약 판매 중인 이 작품을 보고 바로 구매 버튼을 클릭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과거에 동네 비디오 가게에서 인연을 맺었던 소년 소녀들과 가게 주인이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어른이 된 소년 소녀들이 다시 모여 유튜브 채널을 만들고 돈키호테를 자처했던 가게 주인을 추적하는 여정을 담고 있다. 작가의 작품답게 당연히 따뜻하고 이야기는 흥미로우며 쉽게 읽히고 희망적이다. 그렇다고 작가의 메가 히트작인 .. 2024. 4. 29.
박산호 장편소설 <오늘도 조이풀하게!>(책이라는신화) 나는 2000년대 후반 맥스 브룩스의 장편소설 에서 작가의 이름을 처음 봤다. 좀비 아포칼립스 마니아여서 관련 영화와 드라마를 섭렵했는데, 작가가 변역한 는 내가 좀비물에 빠져든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이후 디스토피아를 그린 장편소설 에서도 작가의 이름을 역자로 봤다. 그 이름을 역자가 아닌 소설가로 다시 본다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그것도 화사한 표지를 가진 청소년 소설의 저자로 말이다. 다문화가정 차별을 비롯해 한부모 가정, 학원 폭력, 성소수자, 권력과 갑을 관계, 작은 사회 등 표지는 화사해도 다루는 주제가 꽤 무겁다. 이런 문제가 학교뿐만 아니라 학교 바깥에서도 벌어지는 사회 문제이기 때문에 마냥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소설로 읽히진 않는다. 곳곳에 반전과 복선이 깔려 있어 흥미진진할 뿐만 아니라.. 2024. 4. 28.
정대건 장편소설 <급류>(민음사) 사다 놓은 지 꽤 됐는데, 이상하게 손에 잡히지 않아서 읽기를 미뤘던 작품이다. 책을 덮은 후에는 늦게 읽은 걸 후회했다. 어떤 어려움이 와도 이어질 인연은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걸 지독하면서도 섬세하게 보여주는 러브스토리다. 읽는 내내 사랑이란 과연 무엇이고, 무엇이 현실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서로를 끌리게 하며, 시간이 어떻게 사랑을 성숙하게 변화시키는지를 곱씹게 만든다.  내용과 결이 다르지만, 최진영 작가의 중편소설  속 커플이 페이지 위에 종종 겹쳐서(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비극으로 끝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스럽게도 마지막은 보다 훨씬 희망적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전개와 훌륭한 가독성(작품 제목처럼 빠르게 페이지가 넘어간다!)이 매력적이다. 누군가를 구하고자 망설임 .. 2024. 4.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