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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추천72

김호연 장편소설 <불편한 편의점>(나무옆의자) 내가 새 장편소설 집필을 위해 횡성 예버덩문학의집에 머무를 때, 짬을 내 읽었던 많은 소설 중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작품은 김호연 작가의 였다. 작가의 신작이 나왔다는 소식이 보여서 예버덩문학의집에서 나가면 바로 읽어야겠다고 다짐했는데, 내 신간 준비 때문에 바빠 독서가 늦어졌다. 이 작품 또한 처럼 '치유계' 소설이다. 이 작품은 서울의 대표적 슬럼가 중 하나인 청파동의 한 편의점을 배경으로 다양한 인물에 얽힌 사연을 따뜻한 시선으로 풀어낸다. 정년퇴임 교사 출신 편의점 사장, 사업자금을 마련하려고 편의점을 노리는 사장의 아들, 성실한 20대 아르바이트생 시현, 야외 테이블에서 혼술로 고단함을 잊는 회사원, 작가 자신을 반영한 캐릭터인 희곡 작가, 그리고 이들 사이를 잇는 미스테리한 노숙자 출신 편의점 .. 2021. 7. 2.
최진영 장편소설 <내가 되는 꿈>(현대문학) 과거의 나, 혹은 미래의 나와 이야기를 주고받는 상상은 늘 씁쓸하다. 그런 상상은 보통 현재의 나에 만족할 수 없는 현실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몰라도 나는 그랬다. 나는 주로 과거의 나를 윽박질러 현재를 바꾸는 상상을 했다. 연애 경험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굳이 모든 사람에게 좋을 사람일 필요는 없다, 먹지 못하는 사과를 파는 회사의 주식을 사야 한다, 비트코인을 열심히 채굴해라, 영끌해서 어떻게든 서울 내 아파트를 장만해라 등... 이 작품은 그런 상상을 현실로 끌어왔다. 그렇다고 이 작품 속 상상이 내 상상처럼 속물적이란 말은 아니다. 이 작품은 30대 직장인인 '태희'가 어린 시절의 자신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린다. 태희는 자신을 인격적.. 2021. 7. 2.
손병현 소설집 <쓸 만한 놈이 나타났다>(문학들) 올해 들어 읽은 소설집 중 가장 아픈 작품이다. 이 소설집은 1980년 5월에 광주에서 벌어진 비극이 지금까지 어떤 형태의 상처와 아픔으로 남아있는지 전한다. 무자비한 고문의 후유증이 남긴 트라우마에 시달리다가 주변인을 괴롭히고 스스로 삶을 등지는 사람들, 의도치 않게 비극의 중심에 섰거나 혹은 주변부에서 떠돌던 사람들의 생생한 고백이 첫 페이지부터 끝까지 이어진다. 여기에 생생한 호남 방언이 읽는 맛을 더하고, 실제 유가족과 시민의 증언이 소설에 현장감을 부여한다. 작가는 비극의 상처와 아픔을 과장하거나 축소하지 않고, 누군가를 무작정 매도하거나 연민하지도 않는다. 그저 소설과 적당히 거리를 둔 채 40년 전 광주에서 벌어진 비극의 과거와 현재를 들여다볼 뿐이다. 먼저 흥분하거나 울지 않는 작가의 태도.. 2021. 6. 5.
김탁환 장편소설 <당신이 어떻게 내게로 왔을까>(해냄) 횡성 예버덩문학의집에서 새 장편소설 집필을 마친 후 귀가해 가장 먼저 한 일은 사놓고 읽지 않은 새 소설을 읽는 일이었다. 가장 먼저 집어 든 작품은 이 소설이었다. 어른의 사랑을 그린 독한 연애소설이다. 읽는 내내 머릿속에 배경 화면처럼 떠오른 색깔은 보라색이었다. 섬세하면서도 날카롭고, 매혹적이면서도 위험하며, 외면하고 싶은데 궁금한 이야기의 연속이었다. 적지 않은 분량인데도 페이지가 술술 넘어갔다. 이야기의 힘이다. 여기에 충분한 취재가 없으면 불가능한 기업소설의 요소가 어우러져 재미를 더한다. 가방과 관련한 업계의 다양한 용어와 방대한 설명은 마치 패션 잡지를 들여다보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끝까지 이야기를 궁금하게 하는 구성은 추리소설을 연상케 한다. 소설 속에 담긴 또 다른 소설(이건 작.. 2021. 6.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