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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소설84

은모든 장편소설 <한 사람을 더하면>(문학동네)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 포르투갈 전 총리 같은 독재자가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 에 등장하는 '피의 그믐날' 이후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날이 오면 이 작품 속 대한민국과 비슷하지 않을까. 이 작품은 코로나19 같은 팬데믹이 몇 차례 더 벌어지고 경제 위기가 심각해진 2040년대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적당히' 무너진 세상을 겨우겨우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의 일상을 그린다. 작품 속 대한민국 국민의 생활 수준은 계란 한 알 먹기 부담스러울 정도로 과거보다 열악한데, 디스토피아라고 부르기엔 뭔가 하찮다. 천천히 침몰하는 거대한 배, 천천히 끓는 물 속 개구리 같은. 지속된 경제 위기 때문에 안 그래도 낮은 출생률은 더 낮아지고 노년층이 급증하자 정부는 독신세 부담을 점점 늘린다. 이 같은 설정을 소설로만 .. 2023. 11. 28.
최유안 연작소설 <먼 빛들>(앤드) 최근 들어 한국 문학계에서 보이는 중요한 흐름 중 하나는 일하는 사람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소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소설이 과거에 없진 않았지만, 최근에 노동을 다루는 소설은 노동 그 자체를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이념을 강조했던 과거 노동 소설과 차이를 보여준다. 나는 현실에 발붙인 서사를 사랑하고 그중에서도 땀 흘리는 소설을 편애한다. 그런데 그런 소설을 읽다 보면 일부 노동 현장이 비어있음을 느낄 때가 많다. 그중 하나는 우리 주변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노동인 막노동이 이뤄지는 현장이다. 이는 나를 포함해 작가 대부분이 막노동을 구체적으로 경험한 일이 드물고, 막노동 현장을 오래 경험한 사람은 자기 경험을 굳이 밝히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평생 막노동을 한 아버지는 내게.. 2023. 11. 23.
문진영 소설집 <최소한의 최선>(문학동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자존감이 바닥을 쳤던 때가 몇 차례 있는데, 그중 첫 번째가 고등학교 시절이다. 국민학교와 중학교 시절의 나는 반에서 1등을 도맡아 하던 우등생이었고, 앞으로도 1등은 계속 내 몫일 줄 알았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입학해 치른 첫 시험에서 나는 생전 받아보지 못한 등수(반에서 10등 이하, 전교에서 100등 이하)를 받았다. 처음에는 그저 실수라고 여겼는데, 거듭된 시험을 통해 그게 내 본래 실력이라는 점만 더 확실해졌다. 고등학교 3년은 내가 결코 특별한 존재가 아님을 매 시험을 통해 받아들여야 했던 시간이었다. 세상이라는 무대에 주인공의 들러리를 서고 싶은 사람이 과연 존재할까? 하지만 누군가로부터 들러리로 살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당당히 그렇다고 말하기는.. 2023. 11. 23.
청예 장편소설 <라스트 젤리 샷>(허블) 초지능 안드로이드인 '인봇' 삼남매와 이들을 만든 연구자가 윤리 법정에 오른다. 각 인봇의 이름은 '엑스', '데우스', '마키나'.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들의 능력은 신과 비교될 정도로 대단하다. '엑스'는 인간의 노동을 돕는 인봇으로 지금까지 맡았던 모든 임무를 훌륭하게 완수했다. '데우스'는 엄청난 지적 능력을 발휘하는 인봇으로 세상 모든 것을 논리적으로 바라보고 해석하는 데 탁월하다. '마키나'는 인간의 감정을 세밀하게 이해하는 인봇으로 간병에 최적화된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런데 충격적이게도 이들은 모두 인간을 해치고 말았다. 그야말로 완벽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 세 인봇은 무슨 이유로 그런 선택을 한 걸까? 작품을 읽기 전부터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설정이다. 이 작품의 매력은 완벽에 .. 2023. 11.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