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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소설84

장류진 소설집 <연수>(창비) 대기업 합숙 면접에서 취준생끼리 벌이는 치열한 경쟁(펀펀페스티벌), 지금까지 성공적인 삶을 살아왔는데 운전에서만 막히는 회계사(연수), 신입사원부터 차근차근 올라온 여성 간부의 시선으로 바라본 기업 문화(공모), 정직원 전환만 바라보며 치열하게 현장을 취재하는 인턴기자(동계올림픽). 주변에서 흔히 보일 법한 캐릭터와 생활에 밀착한 주제가 작가 특유의 가독성 좋은 문장에 실려 후루룩 읽힌다. 작가의 전작들이 모두 그랬듯이 이 소설집 또한 페이지터너다. 자전거 동호회(라이딩크루)와 한 대학 국문과(미라와 라라)를 배경으로 미묘하게 갈등하는 인간 군상을 그리는 단편도 직장을 배경으로 다룬 다른 단편만큼 흥미롭다. 다만 책을 덮을 때 뭔가 의문이 남았다. 왜 장 작가의 소설은 노동을 다루는 다른 작가(ex : .. 2023. 9. 17.
서경희 장편소설 <김 대리가 죽었대>(앤드) 우리가 타인에게 얼마나 쓸데없는 관심이 많고, 동시에 얼마나 관심이 없는지 웃프게 보여주는 블랙코미디다. 이 작품은 사내 홍보팀의 에이스 '김 대리'가 갑자기 죽었다는 소문이 퍼지고, 그의 죽음을 둘러싼 의문을 푸는 동료 직원들의 소동을 그린다. '김 대리'는 이 작품에 실제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심지어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확실치 않다. '김 대리'는 모두의 기억과 소문 속에서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내는데, 동료 직원들의 이야기를 모아 놓고 보니 정말 존재했던 인물인지조차 의문이 든다. '김 대리'에 의지해 모든 일을 처리해 온 동료 직원들은 그가 사라지자 갈피를 못 잡고 우왕좌왕한다. 실은 '김 대리'가 사실 나쁜놈이었다며 태세를 전환하는 동료 직원도 속출한다. 이 작품은 소문에 따라 부화뇌동하고 .. 2023. 9. 12.
강희찬 장편소설 <의리주인>(북레시피) 정조의 최측근이었던 홍국영의 눈으로 당대의 조선을 바라보는 역사소설이다. 조선의 마지막 불꽃이었던 정조, 그런 정조의 최측근이었다가 빠르게 몰락한 젊은 권신. 홍국영은 파란만장한 삶 때문에 이미 여러 차례 소설, 영화, 드라마 등으로 다뤄진 캐릭터다. 아예 '홍국영'이란 제목으로 대하드라마가 만들어진 일도 있었고. 이순신이라는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을 완전히 바꾼 김훈 작가의 처럼 쓰지 않는 이상, 그런 캐릭터를 다룬 작품으로 주목받기란 쉽지 않다. 이 작품은 조정에 진출한 홍국영이 정조의 왕위 계승을 돕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긴박한 순간을 생생하게 다룬다. 가독성이 훌륭하고 흥미로운 작품이다. 당대 동북아를 둘러싼 국제 정세를 바탕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 할 당위성을 끌어내는 이야기 전개가 설.. 2023. 9. 12.
문미순 장편소설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나무옆의자) 이 작품은 점점 심각해지고 있는 간병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고령화 문제는 빈약한 사회 안전망 및 저출산 문제와 맞물려 간병 파산이나 살인과 같은 비극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작품은 치매 어머니를 돌보는 중년 여성 '명주'와 뇌졸중을 앓는 아버지를 돌보는 청년 남성 '준성'의 이야기를 교차해 보여주며 복지의 사각지대를 조명한다. 두 주인공의 삶은 비극의 종합선물세트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임대아파트에서 어머니를 돌보며 살던 명주는 어머니가 죽자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를 참고해 시신을 미라로 만든다. 어머니 앞으로 나오던 연금이 끊기면 자신도 살길이 막막해진다는 이유로. 뉴스로 보도돼 사회적 공분을 일으켰던 연금부정수급 사례가 오버랩된다. 준성은 아버지를 돌보면서 생활비를 벌기 위해 밤에는 대리운전을 .. 2023. 6.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