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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소설84

윤고은 장편소설 <불타는 작품>(은행나무) 배달 아르바이트로 근근이 생활을 이어가는 무명 화가가 느닷 없이 자신을 후원하겠다는 제안을 받는다. 제안한 곳은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미국의 한 재단인데, 어이없게도 재단의 주인이 '로버트'라는 개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개다. 犬. DOG. 멍멍이. '로버트'가 무명 화가의 그림을 '픽'했단다. 대신 조건은 하나, 지원받아 완성한 작품 중 하나를 소각해야 한다. 소각할 작품은 '로버트'가 정한다. '로버트'가 '픽'해 작품을 소각 당한 작가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티스트로 발돋움하고, 해당 작가의 작품 가격은 큰 폭으로 뛰어오른다. 그런데 사람도 아닌 개의 안목이 정말 정확할까? 개의 언어를 통역해 주는 사람과 기계가 있다지만, 작가와 개가 정말 제대로 소통하고 있는 건가? 읽기 전부터 호기심.. 2023. 11. 11.
이경란 장편소설 <디어 마이 송골매>(교유서가) 이 작품은 그룹사운드(당시 활동했던 밴드에는 이 표현이 찰떡이다) 송골매가 38년 만에 재결합 콘서트를 연다는 소식으로 시작한다. 도입부만으로도 소설이 어떻게 흘러갈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송골매를 좋아했던 옛친구들이 콘서트라는 매개를 통해 오랜만에 모여 우정을 확인하는 이야기 아니겠는가. 예상대로 이 작품은 80년대 여고 시절을 보내며 깊은 우정을 쌓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흩어진 네 친구가 콘서트에 모이는 과정을 그린다. 예상할 수 있다고 해서 읽는 즐거움이 줄어들진 않는다. 오히려 이런 소설은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야 공감할 부분도 많다. 원래 친구끼리 모이면 가장 많이 하는 이야기가 옛날이야기 아닌가. 나는 비록 송골매 세대는 아니지만, 한때 한국 록 계보를 집요하게 따라 들었던 시절이 있.. 2023. 11. 5.
이주란 소설집 <별일은 없고요?>(한겨레출판) 구입한 지 반년이 넘었는데, 뒤늦게 읽은 소설집이다. 몇 년 전 작가의 소설집 을 읽었는데, 따뜻하고 섬세하지만 내겐 심심했다. 그 기억 때문에 이 소설집이 독서 목록에서 자꾸 밀렸다. 어떻게든 읽어 보려고 연희문학창작촌에 들고 갔는데, 퇴실일자가 가까워져 오는데도 손에 잡히질 않았다. 퇴실해 집으로 돌아오면 읽을 책들이 쌓여있을 게 뻔해 다시 건드리지 않을 것 같아 마음을 다잡고 책을 펼쳤다. 소설집에 실린 여덟 작품 속 주인공은 모두 욕심 없이 평범하게 살고 싶은데 그런 소박한 바람이 쉽게 허락되지 않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들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그저 천천히 자기만의 걸음을 걷고, 천천히 주위와 소통하며, 천천히 상처를 보듬을 뿐이다. 마치 초식동물처럼 아파도 요란하게 굴지 않는다. 그렇게 일상.. 2023. 10. 30.
백수린 장편소설 <눈부신 안부>(문학동네) 출간 당시 구입했는데 손이 가지 않아 오랫동안 손대지 않은 작품이다. 읽기를 망설였던 이유는 백수린 작가가 지금까지 내놓은 소설집이 나와 결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소설집보다는 산문집이 더 읽을만했다. 그랬는데도 왜 이 작품을 구입한 이유는 단 하나, 표지가 예뻤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내가 지금까지 본 모든 책 표지 중에 이 작품 표지보다 예쁜 건 없었다. 문학동네가 디자인을 기가 막히게 한다고 감탄하며 책날개를 보니, 주유진 작가의 그림이었다. 이후 웹서핑으로 주 작가의 그림을 찾아 자주 감상하곤 했다. 그림을 모르는 사람인데도 주 작가의 그림이 주는 느낌이 정말 좋았다. 돌이켜 보니 작가의 전작인 소설집 도 표지에 혹해 구입했었다. 사설이 길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작품은 내가 지금까.. 2023. 10.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