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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소설84

허남훈 장편소설 <우리가 거절을 거절하는 방식>(은행나무) 최근에 읽은 한국 소설 중 현실과 밀착도가 가장 강한 작품이다. 작품의 주인공은 유망한 전문직이라는 CFP(국제공인 재무설계사) 응시에 필요한 금융기관 재직 경력을 쌓기 위해 보험사에 입사한 전직 기자다. 언론계 이야기와 보험업계 이야기가 반복해 교차하며 서사를 쌓아가는데, '방구석소설'에서 보기 어려운 생생한 업계 묘사가 일품이다. 언론계 이야기를 읽을 때는 내게 익숙한 내용이어서 자주 한숨이 새 나왔다. 주인공은 지역지 기자 출신으로 새로 창간한 서울의 한 연예 일간지에 경력 기자로 합류했다. 지역지에서 일하다가 낯선 조직에서 낯선 일을 하니까 기사 발굴은커녕 기본적인 취재가 제대로 될 리 없다. 무의미한 특종과 속보 경쟁에 시달리던 주인공은 결국 공황장애를 진단을 받게 되고, 행복해지기 위해(아니 .. 2021. 7. 26.
박상 장편소설 <복고풍 요리사의 서정>(작가정신) 처음부터 끝까지 황당한 상황과 뻔뻔한 농담의 연속이다. 소설의 배경은 지중해 어딘가에 있는 '삼탈리아'이고, 그 나라에선 한국의 현대시가 대중문화이며 화폐처럼 쓰이기도 하는데, 주인공은 비밀 레시피를 입수하러 삼탈리아로 밀입국한 요리사로 한때 시인이 되기를 갈망했던 인물이다. 양자역학을 비롯해 다양한 과학 용어도 튀어나오지만 SF는 아니다. 작가도 그 용어를 이해하지 않고 남발한다는 게 눈에 보이니 말이다. 각주에도 진지하게 구라가 달려있어 이해를 방해한다. 이 같은 설정만 봐도 이야기가 어떤 방향으로 튈지 궁금해지지 않나? 기상천외한 모험담을 담은 이 작품에서 무언가 대단한 의미를 찾고 이해하려고 들면 곤란하다. 흉기를 든 아이들이 주인공에게 돈 대신 시를 내놓으라고 협박하는 사태 앞에서 이해가 무슨 .. 2021. 7. 24.
곽재식 연작소설 <ㅁㅇㅇㅅ: 미영과 양식의 은하행성서비스센터>(아작) 다양한 과학 개념과 용어가 등장하지만, 법칙에 딱 들어맞는 이야기를 기대하거나 상상하면 곤란하다. "SF는 이렇게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이나 고민을 제쳐 두고 자유롭게 쓴 이야기의 연속이다. 그래서 부담 없이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소설의 중심에는 의뢰받은 온갖 잡일을 처리하는 ‘은하행성서비스센터’의 사장 이미영과 이사 김양식이 있다. 작가는 둘이 티격태격하며 의뢰받은 일을 처리하는 과정을 따라가며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문제점을 풍자한다. 지적 생명체를 인간의 기준으로 판단해 보호하느냐 마느냐를 따지는 '인간적으로 따져보기'는 인간이 얼마나 오만한 존재인지 돌아보게 한다. '칼리스토 법정의 역전극'은 로봇 판사를 동원한 재판에서 알고리즘을 파악해 재판 승률을 높이는 과정을 그리며 법을 미꾸라.. 2021. 7. 21.
김홍 소설집 <우리가 당신을 찾아갈 것이다>(문학동네) 매일 다양한 장르의 새 앨범을 챙겨듣는 생활을 오래 했다. 그러다 보니 언젠가부터 재킷 이미지만 봐도 장르가 보이고, 심지어 들을 만한 음악인지도 구별할 수 있게 됐다. 내 경험상 재킷이 구리면 음악도 구리다. 뭐라고 딱히 설명하긴 어려운데, 예외는 없었다. 내게 재킷은 모니터할 앨범을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그런데 책은 표지만 봐선 내용이 괜찮은지 판단하기가 무척 어렵다. 특히 한국문학 단행본은 표지만으로는 도저히 내용을 판단하지 못하겠다. 출판사에는 미안한 말인데 대부분 구리고 정형화돼 있다. 이 소설집은 올해 들어 처음으로 표지만으로 내용을 궁금하게 만들었다. 띠지에 '문학계의 주성치'라는 문구까지 인쇄돼 있어 궁금증이 더 커졌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후 느낌은 '주성치'보다는 '버스터 키튼'.. 2021. 7.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