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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소설84

정한아 소설집 <술과 바닐라>(문학동네) 요즘은 과거보다 못하지만, 초기에 대산대학문학상의 위세는 대단했다. 1회 당선자가 김애란 작가, 2회 당선자가 윤고은 작가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당선과 동시에 등단을 인정받고, 당선작은 계간 창작과비평 지면에 실리니 어지간한 신춘문예나 문예지 신인상 당선보다 권위 있고 실속도 있다. 그러다 보니 전국의 난다 긴다 하는 대학생 문사가 모두 공모를 노렸다. 내가 처음 응모했던 2005년 4회 공모의 소설 부문 당선자가 정한아 작가였다. 그런 인연(?) 때문에 나는 작가의 작품을 등단작부터 대부분을 따라 읽었다. 세월이 흘러 대학생이었던 작가는 나이가 들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됐다. 소설을 읽는 일은 값싸게 간접적으로 다른 인생을 경험해보는 일이다. 작가의 작품을 따라 읽는 과정은 작가의 변화한 삶과 .. 2021. 9. 11.
하라다 히카 소설 <낮술>(문학동네) 지난 5주간 머물렀던 호텔프린스에서 돌아온 뒤 처음 펼친 책이다. 이 책을 펼친 이유는 내년에 출간할 예정인 첫 번째 에세이 때문이다. 에세이에 담을 주제가 술안주여서 자연스럽게 이 책에 마음이 끌렸다. 제목답게 주인공이 술을 마시는 시간은 낮인데, 그 이유는 주인공의 직업 때문이다. 주인공은 이른 나이에 갑작스러운 임신으로 확신이 없는 남자와 얼떨결에 결혼했다가 짧게 살고 이혼한 여자다. 경제력 부족으로 딸을 전남편에게 맡긴 주인공은 친구의 도움을 받아 호구지책으로 '지킴이'라는 일을 한다. 주인공은 야간에 고객에게서 의뢰받은 일을 하는데, 일의 종류는 말동무가 돼주는 일부터 청소까지 다양하다. 퇴근 시간이 낮이다 보니, 하루 일과의 마지막은 귀가 전에 반주를 마시는 일이다. 책은 짧은 에피소드 16개.. 2021. 9. 6.
최유안 소설집 <보통 맛>(민음사) 읽는 내내 미묘하고도 불편한 긴장감이 서늘하게 몸을 감쌌다. 이 소설집에 실린 단편은 몇 작품을 제외하면 누구나 살면서 직간접적으로 겪어봤을 만한 상황을 그린다. 그런데도 읽는 내내 낯설었다. 드러내면 불편해질 수 있다는 이유로 외면했던 다양한 감정을, 소설이 깊이 들여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작가는 우리가 인간관계 속에서 수시로 경험하는, 남들에게 대놓고 말하기 어려우면서도 찝찝한 감정을 섬세하게 풀어낸다. 이 소설집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좋은 사람이 되려고 애쓰지만 끝내 실패한다. 이는 우리의 모습이기도 한데, 우리는 그 모습을 잘 인정하지 않는다. 드라마 이 화제를 모으던 시절을 떠올려 보자. 당시 술자리에서 자신을 '오 차장'이라고 자처하는 '마 부장'이 얼마나 많았던가. 우리는 좋은 사람이 .. 2021. 7. 29.
구효서 장편소설 <옆에 앉아서 좀 울어도 돼요?>(해냄) 강원도 평창의 산골에 자리 잡은 펜션이 작품의 배경이다. 도라지꽃이 흔하게 보일 때 이야기가 시작돼서 질 때쯤 끝나는 걸 보니, 소설 속 계절은 여름과 가을 사이로 짐작된다. 때죽나무, 꽝꽝나무, 구절초, 기생초, 파드득나물 등 다양한 식물이 작품에 소품으로 등장한다. 서정적인 이야기가 펼쳐지지 않을 수 없는 설정이다. 여기에 음식 솜씨가 좋은 펜션 주인과 애늙은이 같은 여섯 살 꼬마, 아흔을 앞둔 한국전쟁 참전 용사 출신 미국인 노인과 한국인 아내, 귀촌을 꿈꾸는 부부가 모여 얽히고설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이들은 저마다 다른 사연과 상처를 가진 착한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어깨를 보듬고 위로를 주고받는다. 마음이 따뜻해지지 않을 수가 없다. 참 다정한 작품이다. 페이.. 2021. 7.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