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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소설141

정세랑 장편소설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문학동네) 현재 대한민국에서 활동하는 소설가 중에서 가장 스펙트럼이 넓은 작가를 한 명만 꼽자면 정세랑 작가를 꼽겠다. 같은 장르 소설은 물론 같은 성장소설, 처럼 현대사와 여성 서사를 훌륭하게 엮은 장편소설까지. 특히 는 최근 몇 년 사이에 나온 한국 소설을 통틀어 최고작이라고 생각한다. 한 작가가 어떻게 이렇게 다양한 소재를 자유롭게 다루고 심지어 잘 쓰는지 소설을 쓰는 사람으로서 짜증 날 때가 많다. 물론 질투 섞인 칭찬이다. 다음에는 어떤 작품을 내놓을지 진심으로 기다리는 몇 안 되는 작가인데, 역시 예상치 못한 장르의 소설로 뒤통수를 친다. 역사 추리소설이라니. 그것도 통일신라를 배경으로 다룬. 이 작품은 당나라 유학파 출신인 육두품 가문 남장여자가 신라의 수도 금성으로 돌아와 주변에서 벌어지는 이런저런 .. 2023. 12. 19.
김하율 장편소설 <이 별이 마음에 들어>(광화문글방) 1978년 대한민국 서울에 불시착해 여공으로 살아가는 외계인. 설정만으로도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흥미롭지 않은가. 설정만 보면 SF스럽지만, 이 작품은 이방인의 시선으로 과거 대한민국의 열악한 노동 현실이 요즘에 어떤 형태로 반복되고 있는지 보여주는 노동소설이다. 그렇다고 해서 읽기에 무거운 소설은 아니다. 오히려 경쾌하고, 심지어 웃기다. 주인공이 떠나온 행성의 생존 매뉴얼에 따르면, 낯선 행성에 불시착했을 때 생존율을 높이는 방법은 그 행성에서 가장 고등한 생명체로 변신하기다. 하필 주인공이 맨 처음 마주친 고등 생명체는 여공이었고, 주인공은 가장 평균적인 모습을 가진 여공으로 변신해 공장에 스며든다. 그곳에서 주인공은 그야말로 미친 학습 능력을 발휘해 말도 안 되는 단기간에 시다, 미싱사를 거쳐 .. 2023. 12. 10.
백지영 장편소설 <하우스푸어 탈출기>(알렙) 평생 셋방을 전전하며 살다가 영끌해 평생소원인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뤘다. 그런데 세입자를 들일 때마다 문제가 생기고, 얼마 안 되는 월급은 버는 족족 주택담보대출 이자를 갚는 데 써야 한다. 어깨에 짐처럼 짊어진 집을 끝까지 지키는 게 옳은지, 집에서 벗어나는 게 옳은지 고민하던 주인공. 그런 주인공에게 더 큰 고민을 짊어지게 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회사 후배 직원이 상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호소하다가 억울하게 회사에서 쫓겨났는데, 공교롭게도 주인공은 성추행 현장을 촬영한 사진을 증거로 가지고 있다. 후배의 처지는 가엾지만, 괜히 나섰다간 상사에 밉보여 회사에서 쫓겨나 월급이 끊겨 이자 상환이 밀리고 집을 내놓아야 할지도 모른다. 당신이 주인공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이 작품은 부당한 현실과.. 2023. 12. 8.
배명훈 연작소설집 <화성과 나>(래빗홀) 소싯적에 과학자를 꿈꾸며 이나 같은 잡지를 열독했던 시절이 있었다. 과학 잡지답게 우주 탐사를 주제로 다룬 기사와 사진이 많이 실려 있었는데, 지금까지 내 기억에 강렬하게 남아 있는 건 튜브에 담긴 우주식량을 짜 먹는 비행사의 모습이다. 식사하는 비행사의 표정이 딱히 즐거워 보이진 않았지만, 나는 그 맛이 정말 궁금해 미치는 줄 알았다. 지금이야 튜브 안의 내용물이 유동식일 테고, 지구에서 차려 먹는 음식보다 맛이 없다는 걸 충분히 짐작하지만, 어린 시절 내 눈에는 그저 맛있어 보였다. 이젠 단순히 배를 채우기 위해 먹는 음식은 식량보다 사료에 가깝다는 걸 알기에, 비행사들이 당시에 얼마나 고생했을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요즘 우주비행사는 과거보다 음식다운 음식을 먹는 듯하지만, 잘 해봐야 동결건조 .. 2023. 12.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