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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소설141

임국영 소설집 <어크로스 더 투니버스>(자음과모음) 제목에 눈길이 가서 선택한 소설집이다. 제목만으로도 이 소설집에 담긴 이야기의 성격과 작가에 관해 많은 걸 예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아마도 90년 말에서 2000년대 초반에 그 시절을 보냈을 것이며, 유년 시절과 청소년기를 다룬 소설이 실려 있을 테다. 서브컬쳐가 주된 소재로 등장하고, 김세희 작가의 장편소설 처럼 당시 예민한 10대가 경험했을 법한 BL이나 퀴어 서사가 적절하게 들어가 있을 것이다. 과거가 그저 과거로만 끝나지 않으며, 현재의 일부임을 보여줄 것이다. 예상은 거의 빗나가지 않았다. 나보다 약간 아랫세대의 이야기이지만, 당대 문화를 디테일하게 묘사하고 있어 흥미로웠다. 내 경험과 겹치는 이야기도 꽤 있어서, 이 소설집을 읽는 시간은 내 지난 시절을 추억하고 복기해보는 시간이기도.. 2021. 7. 16.
장진영 소설집 <마음만 먹으면>(자음과모음) 밥을 먹다가 모래를 한 알 씹었는데, 뱉자니 아깝고, 삼키자니 찝찝하다. 이 소설집을 읽고 든 기분이다. 익숙한 듯하면서도 낯설고, 차분한 듯하면서도 위태롭다. 작가는 평화로워 보이는 일상, 우리가 베푼다고 생각하는 선의와 친절의 이면에서 권력 관계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주목한다. 읽는 내내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는 기분을 느꼈다. 대한민국 사회가 약자를 바라보는 편견과 다루는 방식에 깃든 폭력성을 꽤 불편한 방식으로 드러낸다. 작은 분량인데 쉽게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았다. 이 소설집은 신인의 단편 3편을 모아 단행본으로 엮는 자음과모음의 '트리플' 시리즈로 출간됐다. 신인이 단행본을 내기까지의 과정은 꽤 험난하다. 소설집에는 보통 7~10편 정도의 단편이 실린다. 작품을 발표할 지면은 예나 지금이.. 2021. 7. 15.
백수린 소설집 <여름의 빌라>(문학동네) 작년에 사다 놓고 새 장편 집필 때문에 읽지 못한 책을 이제야 펼쳤다. 책장을 넘기며 떠올랐던 이미지를 두서없이 기록한다. 이상에 미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불안과 불만, 신도시 특유의 정돈된 느낌, 관계의 무상함, 반복되는 일상 속에 스며드는 권태, 단정함 이면에 감춰진 욕망... 나는 작가가 최근에 낸 산문집 이 훨씬 좋았다. 2021. 7. 12.
정세랑 장편소설 <시선으로부터,>(문학동네) 새 소설을 쓰는 동안에는 아무 책도 읽지 못한다. 쓰지 않는 동안에는 가능한 한 많이 읽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작년에 사다 놓은 작품을 이제야 펼쳤다. 작년에 이어 지금까지도 베스트셀러 수위권에 있는 이 작품에 대해 독후감 성격의 구구절절한 감상은 적지 않겠다. 지금 당장 포털사이트에서 이 작품을 검색하면 훌륭한 리뷰가 수두룩하게 나오니 말이다. 좋았던 점만 짧게 적고 넘어가겠다. 최근 몇 년 사이에 페미니즘을 정면으로 다룬 한국 소설이 많이 출간됐다. 그런 작품을 꽤 많이 챙겨 읽었는데, 이 작품은 그중에서 가장 건강하다는 느낌을 줬다. 자기연민이나 피해 의식에 경도되지 않고, 현실에 맞서며 끝까지 당당한 등장인물들의 태도가 아름다웠다. 곳곳에서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잃지 않는 유쾌한.. 2021. 7.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