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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34

문진영 소설집 <최소한의 최선>(문학동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자존감이 바닥을 쳤던 때가 몇 차례 있는데, 그중 첫 번째가 고등학교 시절이다. 국민학교와 중학교 시절의 나는 반에서 1등을 도맡아 하던 우등생이었고, 앞으로도 1등은 계속 내 몫일 줄 알았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입학해 치른 첫 시험에서 나는 생전 받아보지 못한 등수(반에서 10등 이하, 전교에서 100등 이하)를 받았다. 처음에는 그저 실수라고 여겼는데, 거듭된 시험을 통해 그게 내 본래 실력이라는 점만 더 확실해졌다. 고등학교 3년은 내가 결코 특별한 존재가 아님을 매 시험을 통해 받아들여야 했던 시간이었다. 세상이라는 무대에 주인공의 들러리를 서고 싶은 사람이 과연 존재할까? 하지만 누군가로부터 들러리로 살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당당히 그렇다고 말하기는.. 2023. 11. 23.
백수린 장편소설 <눈부신 안부>(문학동네) 출간 당시 구입했는데 손이 가지 않아 오랫동안 손대지 않은 작품이다. 읽기를 망설였던 이유는 백수린 작가가 지금까지 내놓은 소설집이 나와 결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소설집보다는 산문집이 더 읽을만했다. 그랬는데도 왜 이 작품을 구입한 이유는 단 하나, 표지가 예뻤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내가 지금까지 본 모든 책 표지 중에 이 작품 표지보다 예쁜 건 없었다. 문학동네가 디자인을 기가 막히게 한다고 감탄하며 책날개를 보니, 주유진 작가의 그림이었다. 이후 웹서핑으로 주 작가의 그림을 찾아 자주 감상하곤 했다. 그림을 모르는 사람인데도 주 작가의 그림이 주는 느낌이 정말 좋았다. 돌이켜 보니 작가의 전작인 소설집 도 표지에 혹해 구입했었다. 사설이 길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작품은 내가 지금까.. 2023. 10. 29.
한소범 산문집 <청춘유감>(문학동네) 작가는 언론계는 물론 출판계에서 소문난 문학기자였고, 그 소문은 현재진행형이다. 언론사는 보통 중견 기자를 문학 담당 기자로 배치한다. 그만큼 무게감 있게 받아들여지는 자리에 나이 서른도 안 된 젊은 기자가 불과 몇 년 만에 업계가 인정하는 훌륭한 문학기자가 됐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한때 김훈 선생님이 머물렀던 자리에서? 보통 사건이 아니다. 하필 나는 짧았던 문학기자 시절에 작가와 함께 필드에서 뛰었다. 그리고 백전백패였다. 내가 그 시절에 가장 많이 참고한 기사는 작가가 쓴 한국일보 기사였다. 부지런하고, 관심사가 넓었으며, 이슈의 핵심이 무엇인지 빠르게 파악했고, 무엇보다도 기사를 참 잘 썼다. 이러니 소문이 안 날 수가 있나. 그렇게 작가는 현재 대한민국 출판, 문학 시장에서 가장 사랑받는 기자.. 2023. 6. 30.
이미상 소설집 <이중 작가 초롱>(문학동네) 책을 덮은 후 이런저런 감상을 쓰다가 한 단편에 실린 문장이 떠올라 멈췄다. "MSG는 남자를 죽이겠다고 해놓고 여자를 죽였다.(중략) 그러나 나는 의구심이 든다. MSG는 처음부터 남자를 죽일 생각이 없었던 것이 아니까? (중략) 당신은 그런 부류가 되고 싶은가? 남자를 죽이기로 해놓고 여자를 죽이는, 아버지를 때리고 싶지만 어머니를 패는,"('살인자들의 무덤' 中) 참고로 MSG는 문세광이고 남자는 박정희 전 대통령, 여자는 육영수 여사를 의미한다. 재일 교포인 문세광은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박정희 암살을 시도했다. 사건 당시 문세광은 권총을 꺼내려다가 첫 탄환을 자기 허벅지에 오발했다. 놀란 문세광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연단을 향해 뛰어나가면서 두 번째 탄환을 박정희에게 발사.. 2023. 5.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