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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35

정한아 장편소설 <친밀한 이방인>(문학동네) 우리의 삶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일종의 연극과 비슷하지 않을까. 5년 동안 서재에 묵혀 구간이 된 이 작품을 읽고 든 생각이었다. 평생 신분을 속이며 살아온 여자 '이유미'의 행적을 추적하는 주인공의 여정이 작품의 큰 줄기다. 주인공은 결혼 후 출산해 몇 년째 소설을 쓰지 못하는 소설가인데, 우연히 이유미가 자신의 미발표작으로 소설가 행세를 하고 다녔음을 알게 된다. 추적 끝에 드러나는 이유미의 인생사는 기가 막히다. 가짜 대학생이었다가 피아노 학원 강사였고, 대학에서 평생교육원 강사로 일하다가 교수로 임용됐으며, 요양병원 의사 행세도 했었다. 이유미는 결혼도 세 차례 했는데 심지어 이름을 바꾸고 남성 행세를 하며 여자와 산 일도 있었다. 인정 욕구와 그 욕구를 받쳐주지 못하는 가정사가 빚어낸 무리한.. 2022. 5. 20.
황여정 장편소설 <알제리의 유령들>(문학동네) 권위주의 시대에 가벼운 유희가 불러온 심각한 나비효과에 휘말린 등장인물들. 그들의 행보를 따라가는 과정이 마치 퍼즐을 맞추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어디까지가 허구이고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짐작하기 어렵게 하는 정교한 구성이 돋보였다. 최근에 읽은 장편소설 중에서 가장 치밀했다. 날이 선 문장이 아닌데도 책을 덮을 때까지 일정한 강도의 긴장감을 놓을 수 없었다. 이 작품은 작가의 데뷔작이지만, 작가가 이 작품을 쓰기 전에 훨씬 많은 장편을 썼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사실 나는 이 작품을 몇 년 전에 샀지만 일부러 피해왔다. 이 작품은 제23회 문학동네소설상 본심에 내 장편소설 (공모 당시 제목은 )와 함께 올랐었다. 데뷔 후 7년 동안 신작을 내지 못했고, 단 한 번도 작품 청탁을 받지 못했던 나는.. 2022. 5. 7.
한강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문학동네) 한강 작가는 이제 취향을 떠나 의무감으로 작품을 읽어야 하는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나 역시 의무감으로 신작이 나오면 사는데, 이상하게 손은 가지 않는 작가였다. 외에는, 읽은 뒤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지만 머리에 남는 기분이 들어서랄까. 이 작품도 작년에 나오자마자 샀는데 이제야 펼쳤다. 문장 하나하나를 뜯어 읽으면 아름답다. 묘사도 생생해서 냄새와 온도가 느껴진다 그 문장이 모여서 만들어내는 한 장 한 장의 풍경도 인상적이다. 그런데 그 풍경을 한꺼번에 모아 놓고 보니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다. 거두절미하고 읽기 힘들었다. 그리고 작가 또한 쓰기 정말 힘들어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와 달리 이 작품으로는 비극적인 사건을 떠올리기가 쉽지 않았다. 평론가든 누군가는 여기서 뭔가 심오한 의미를 찾아내겠.. 2022. 3. 30.
정용준 소설집 <선릉 산책>(문학동네) 반려동물을 잃고, 사고로 자녀를 잃고, 연인을 자살로 떠나보내는 등 이 소설집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무언가를 상실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고민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를 이해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들은 저마다 어딘가를 걷거나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며 아픔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지만 실패한다. '사라지는 것들'의 마지막 부분에 주인공이 남긴 솔직한 고백을 읽으며 무릎을 쳤다. "엄마, 나...... 이제야 뭘 좀 알겠어. 알았는데......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다. 이제 자자. 이상한 소리 그만하고 자자." 작가는 등장인물들을 통해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런데도 살아갈 수밖에 없고, 또 살아지는 게 인생이라고 말이다. 작가의 담담한 태도가 가볍지 않은 위안이 됐.. 2021. 12.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