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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추천72

이두온 장편소설 <러브 몬스터>(창비) 제목처럼 사랑에 미쳐 답이 없는 괴물들이 종합선물세트로 등장한다. 이들의 사랑은 하나 같이 기괴하고 불편한데, 한편으로는 안타깝다. 그런 이들이 모여 서로 적대하다가 연대하는 등 기묘한 관계를 형성하며, 슈퍼카 엔진을 달고 질주하는 불도저인 양 이야기를 밀어붙인다. 이루지 못한 사랑에 미쳐 버린 이들의 질주는 여럿이 죽어나가는 사고를 겪으며 파국으로 치닫는다. 다른 장편소설과 비교해 원고량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읽히는 속도가 장난이 아니다. 처음에는 그저 그런 불륜으로 보였던 작은 이야기에 잔가지가 겪어 큰 나무를 닮은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전개에 놀랐다. 그야말로 '괴물' 같은 소설이다. 책을 덮은 후 머릿속에 단 하나의 질문만 남는다. 도대체 사랑이 뭐 길래? 사랑은 도대체 어떤 감정이기에 나이와 상.. 2023. 5. 12.
김의경 장편소설 <헬로 베이비>(은행나무) 소설을 읽는 일이 다른 인생을 경험할 수 있는 가장 가성비가 좋은 방법이란 걸 실감하게 해준 작품이었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작품은 여성의 임신을 주제로 다룬 작품이다. 더 나아가 보자면 임신이라는 공통 분모로 여성이 연대하고 서로 위로하는 이야기라고 짐작해 볼 수도 있겠다. 이 작품을 다룬 기사도 대부분 그런 논조였지만, 책을 덮은 뒤 감상은 "글쎄?"다. 책을 덮은 뒤 느낀 기분은 복잡했다. 나는 이 작품을 읽고 우리가 과연 서로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존재인지 의문이 들었다. 이 작품의 등장인물은 모두 난임 여성이다. 이들의 직업은 프리랜서 기자, 변호사, 수의사, 경찰, 가정주부 등 다양하다. 평소에는 서로 만날 일이 없는 이들이 난임 여성이라는 공통 분모를 매개로 연결돼 유대를 맺.. 2023. 5. 5.
손병현 소설집 <순천 아랫장 주막집 거시기들>(문학들) 눈치도 일머리도 없는 중년 남자, 초등학생 시절에 그림으로 받은 상이 자랑의 전부인 화가, 평생 제대로 가족을 돌보지 않은 떠돌이, 사업이 망해 도망치듯 도시를 떠나온 남자, 절에 버려져 자라는 아이들, 일자리를 잃고 고시원에서 포커로 소일하는 시간 강사, 원정 성매매를 하다가 코로나 때문에 밥벌이가 막힌 여자... 이 소설집에 등장하는 인물은 하나 같이 어디에도 쉽게 발을 붙이지 못하는 낙오자다. 이들이 겪어 온 세상은 차갑고 가차 없다. 이들에게선 오랫동안 찌든 패배의 냄새가 난다. 하지만 딱히 선량하다는 인상을 주지도 않는다. 오늘 당장 사라져도 아쉬워할 사람 하나 없을 것 같다. 어쩌면 그냥 사라지길 바라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쓸데없이 밥이나 축낸다는 이유로. 이 소설집의 가장 큰 특징은 .. 2023. 5. 3.
김유담 장편소설 <커튼콜은 사양할게요>(창비) 취업 준비 과정이란 게 언제 어디서 내릴지 모른 채 2호선 순환열차를 타고 뱅뱅 도는 일과 비슷하다. 괜찮은 일자리는 적고, 그 일자리를 원하는 사람은 많으니, 전공과 적성을 살리는 취업은 언감생심이다. 꿈과 이상만 좇다간 밥을 굶기 십상이니, 거지꼴을 면하려면 적당히 현실과 타협해야 한다. 여기서 비극이 시작된다. 회사라는 조직은 직원에게서 월급 이상을 빼먹으려고 달려드는데, 직원은 일에서 밥벌이 외엔 의미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니 말이다. 취업 빙하기인데도 매년 신입사원의 1년 내 퇴사율이 점점 높아지는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다. 10여 년 동안 몇몇 직장을 경험하고 깨달은 사실은, 직종과 규모에 상관없이 직원이라는 존재는 얼마든지 대체할 수 있는 부품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과연 대한민국에 직원의.. 2023. 2.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