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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추천72

차무진 소설집 <아폴론 저축은행>(요다) 내 경험상 재미있는 소설을 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등장인물을 극한 상황에 몰아넣는 것이다. 극한 상황에 놓인 등장인물은 그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쓸 수밖에 없다. 그런 과정에서 등장인물은 종종 작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멋대로 움직이는데, 그럴 때는 그 뒤를 쫓아가는 것만으로도 꽤 흥미로운 결과물이 나온다. 등장인물이 맞닥뜨릴 수 있는 최고의 극한 상황은 어떤 상황일까. 정답은 정해져 있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상황보다 극한인 상황이 또 있겠는가. 이 소설집에 실린 여덟 단편은 문학의 영원한 화두인 삶과 죽음이라는 주제를 설화, 도시괴담, 역사, 고전과 엮어 다채롭게 변주한다. 가족물인 줄 알았는데 심령물로 반전하고, 사극인 줄 알았는데 SF가 끼어들더니, 동화의 한 장면이 고어물로 돌변한다. .. 2022. 10. 7.
송경화 장편소설 <민트 돔 아래에서>(한겨레출판) 이 작품은 작가의 데뷔작인 장편소설 의 후속작이다. 옴니버스 형식이었던 데뷔작과 달리,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완결된 장편소설 형식을 유지하고 있다. 그만큼 이야기를 다루는 깊이도 데뷔작보다 깊어졌다. 작가는 인사청문회, 법안 심사, 국정감사, 예산 심사, 당 대표선거, 지방선거, 대선까지 정치부에서 경험할 수 있는 취재 현장을 두루 다루며 주인공의 성장 과정을 따라간다. 대한민국의 언론사 정치부 기자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고 싶다면 이 작품을 정독하면 된다. 이념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는 기자의 모습이 잘 담겨 있다. 나도 이 작품을 읽은 뒤에야 현직에 있을 때 몰랐던 정치부 기자의 일상에 관해 자세히 알았다. 작품 곳곳에 반전이 지뢰처럼 박혀 있어 느닷없이 읽는 재미를 준다. 현직에 있을 때 "정.. 2022. 10. 6.
정은우 장편소설 <국자전>(문학동네) 제목과 표지로 이 작품에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는지 예상해보자. '국자'라는 단어에 전통적 서사물을 의미하는 '전'(傳)이 붙어있다. 아마도 '국자'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이 주인공이고, 적절한 풍자를 곁들였을 테다. 조리기구 국자와 같은 주인공의 이름, 표지에 실린 젓가락과 접시 이미지를 보니 음식과 깊은 관련이 있는 이야기임이 분명하다. 오른손에 당당히 궐련을 든 여성의 실루엣으로 짐작하건대, '전'으로 불리는 전통적 서사물과 거리가 있는 듯하다. 내 예상대로 모두 들어맞았다. 그래서 실망했느냐고 물어보면 Nope! 안티히어로물(이견이 있겠지만 히어로물은 절대 아니라고 본다)에 따뜻한 가족 서사가 결합하면 어떤 케미가 일어나는지 직접 확인해보시라. 이 작품은 내 예상보다 훨씬 다채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 2022. 10. 3.
구한나리 소설집 <올리브색이 없으면 민트색도 괜찮아>(돌베개) 문방사우를 의인화한 '서재야회록'처럼 문구류를 의인화한 이야기의 모음인 줄 알고 가볍게 펼쳤다가 뒤통수를 맞았다. 문구류를 소재로 사춘기 소녀의 일상을 그리는데, 그 안에 담긴 메시지가 의외로 묵직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작가는 어른들의 승진 경쟁 못지않은 치열한 입시 전쟁,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향한 의문, 자녀를 마치 소유물 취급하는 어른들의 욕심, 다문화 가정 등 민감한 주제를 문구류로 엮어 설득력 있게 풀어낸다. 청소년 소설이니 뭐 별것이 있겠냐고 생각하며 페이지를 펼쳤다간 강한 흡인력에 꽤 놀랄 테다. 2020년대 학교의 풍경과 학생의 심리를 묘사하는 디테일도 엄청나다. 현직 교사라는 작가의 직업이 빛을 발하는 부분이다. 나는 요즘 10대가 학교에서 어떻게 생활하는지를 내 20세기 말 학.. 2022. 10.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