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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설66

김하율 장편소설 <이 별이 마음에 들어>(광화문글방) 1978년 대한민국 서울에 불시착해 여공으로 살아가는 외계인. 설정만으로도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흥미롭지 않은가. 설정만 보면 SF스럽지만, 이 작품은 이방인의 시선으로 과거 대한민국의 열악한 노동 현실이 요즘에 어떤 형태로 반복되고 있는지 보여주는 노동소설이다. 그렇다고 해서 읽기에 무거운 소설은 아니다. 오히려 경쾌하고, 심지어 웃기다. 주인공이 떠나온 행성의 생존 매뉴얼에 따르면, 낯선 행성에 불시착했을 때 생존율을 높이는 방법은 그 행성에서 가장 고등한 생명체로 변신하기다. 하필 주인공이 맨 처음 마주친 고등 생명체는 여공이었고, 주인공은 가장 평균적인 모습을 가진 여공으로 변신해 공장에 스며든다. 그곳에서 주인공은 그야말로 미친 학습 능력을 발휘해 말도 안 되는 단기간에 시다, 미싱사를 거쳐 .. 2023. 12. 10.
정은우 소설집 <묘비 세우기>(창비) 지난해 내가 읽은 모든 한국소설 중 최고작은 정은우 작가의 장편소설 이었다. 이 소설집은 정 작가의 첫 소설집이다. 그래서 정말 많은 기대를 하며 이 소설집을 읽었다. 이 소설집에 실린 여덟 작품은 대부분 상실과 회복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소설집을 모두 읽은 뒤 드는 느낌은 당혹스러움이다. 의 결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완전히 다른 작가가 쓴 작품처럼 느껴질 정도로. 같은 작가가 장편과 단편의 결을 이렇게 다르게 쓸 수 있는지 신기했다. 전반적으로 정갈하고 차분하지만, 장편을 읽으며 감탄했던 부분이 거의 느껴지지 않아 아쉬웠다. 나는 정 작가의 단편보다 장편이 훨씬 좋았다. p.s. 여담으로 올해 읽은 한국 소설 중 최고작은 문미순 작가의 장편소설 이다. 현재까진. 2023. 9. 20.
김종연 장편소설 <마트에 가면 마트에 가면>(자음과모음) 재난 발생 후 이재민의 일상과 심리를 그린 장편소설이다. 이 작품 속에서 발생한 지진은 대한민국 전체를 무너뜨릴 정도로 엄청난 규모는 아니다. 아포칼립스 수준으로 모든 국민의 삶을 무너뜨린 재해가 아니어서 오히려 묘사가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작품의 제목에서 파악할 수 있듯이 이 작품의 배경은 대형마트다. 정부는 임시로 이재민을 대형마트와 같은 공공시설에 집어넣고 곧 주거 공간을 제공해 주겠다며 달랜다. 재해 때문에 일상을 보내는 공간이 바뀌었어도 사람들은 여전하다. 자연스럽게 파벌이 갈리고, 반목하고, 싸우고. 이런 가운데 느닷없이 화장실에서 낯선 아기가 발견돼 분위기를 반전한다. 재난을 주제로 다룬 장편이지만, 이야기 전개는 의외로 잔잔하다. 우울하지도, 웃기지도 않는다. 그저 일상의 사소한 기쁨에.. 2023. 6. 30.
문미순 장편소설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나무옆의자) 이 작품은 점점 심각해지고 있는 간병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고령화 문제는 빈약한 사회 안전망 및 저출산 문제와 맞물려 간병 파산이나 살인과 같은 비극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작품은 치매 어머니를 돌보는 중년 여성 '명주'와 뇌졸중을 앓는 아버지를 돌보는 청년 남성 '준성'의 이야기를 교차해 보여주며 복지의 사각지대를 조명한다. 두 주인공의 삶은 비극의 종합선물세트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임대아파트에서 어머니를 돌보며 살던 명주는 어머니가 죽자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를 참고해 시신을 미라로 만든다. 어머니 앞으로 나오던 연금이 끊기면 자신도 살길이 막막해진다는 이유로. 뉴스로 보도돼 사회적 공분을 일으켰던 연금부정수급 사례가 오버랩된다. 준성은 아버지를 돌보면서 생활비를 벌기 위해 밤에는 대리운전을 .. 2023. 6.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