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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소설141

서경희 장편소설 <김 대리가 죽었대>(앤드) 우리가 타인에게 얼마나 쓸데없는 관심이 많고, 동시에 얼마나 관심이 없는지 웃프게 보여주는 블랙코미디다. 이 작품은 사내 홍보팀의 에이스 '김 대리'가 갑자기 죽었다는 소문이 퍼지고, 그의 죽음을 둘러싼 의문을 푸는 동료 직원들의 소동을 그린다. '김 대리'는 이 작품에 실제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심지어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확실치 않다. '김 대리'는 모두의 기억과 소문 속에서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내는데, 동료 직원들의 이야기를 모아 놓고 보니 정말 존재했던 인물인지조차 의문이 든다. '김 대리'에 의지해 모든 일을 처리해 온 동료 직원들은 그가 사라지자 갈피를 못 잡고 우왕좌왕한다. 실은 '김 대리'가 사실 나쁜놈이었다며 태세를 전환하는 동료 직원도 속출한다. 이 작품은 소문에 따라 부화뇌동하고 .. 2023. 9. 12.
이시우 장편소설 <신입사원>(황금가지) 내세울 스펙 하나 없이 알바를 전전하며 아픈 홀어머니를 모시는 주인공. 그런 그가 느닷없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는 ‘업계 최고 대우’를 자랑하는 기업에 지원해 합격한다. 그가 회사에서 하는 일은 3교대로 벽에 붙은 시곗바늘만 바라보는 일뿐인데, 은행에선 지점장이 나와 그를 맞고 남들 연봉보다 많은 월급이 통장에 매달 꽂힌다. 도대체 자신이 하는 일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는데, 그 일이 문명을 지탱하는 일이란다. 그리고 주인공은 매일 기묘한 꿈을 꾸며 자기 일에 의문을 가지게 된다. 도대체 이 회사는 무슨 일을 하는 회사란 말인가. 설정과 분위기가 정말 매력적인 작품이다. 그런데 그 분위기 외엔 의문이 많은 작품이었다. 읽기에 친절한 소설은 아니다. 현재와 과거, 역사와 소문이 기묘하게 얽혀 있는.. 2023. 9. 12.
강희찬 장편소설 <의리주인>(북레시피) 정조의 최측근이었던 홍국영의 눈으로 당대의 조선을 바라보는 역사소설이다. 조선의 마지막 불꽃이었던 정조, 그런 정조의 최측근이었다가 빠르게 몰락한 젊은 권신. 홍국영은 파란만장한 삶 때문에 이미 여러 차례 소설, 영화, 드라마 등으로 다뤄진 캐릭터다. 아예 '홍국영'이란 제목으로 대하드라마가 만들어진 일도 있었고. 이순신이라는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을 완전히 바꾼 김훈 작가의 처럼 쓰지 않는 이상, 그런 캐릭터를 다룬 작품으로 주목받기란 쉽지 않다. 이 작품은 조정에 진출한 홍국영이 정조의 왕위 계승을 돕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긴박한 순간을 생생하게 다룬다. 가독성이 훌륭하고 흥미로운 작품이다. 당대 동북아를 둘러싼 국제 정세를 바탕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 할 당위성을 끌어내는 이야기 전개가 설.. 2023. 9. 12.
김멜라 장편소설 <없는 층의 하이쎈스>(창비) 단편으로 이효석문학상, 젊은작가상 등 굵직한 상을 받은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다. 이 작품은 남산 아래 오래된 상가 건물에 갑자기 함께 살게 된 할머니와 손녀 이야기를 그린다. 할머니의 이름은 '사귀자', 손녀의 이름은 '아세로라' 임성한 작가의 독특한 작명 센스를 떠올리게 하는 이름인데, 그 이름처럼 이 작품은 꽤 무거운 주제를 시종일관 무겁지 않게 다룬다. 사귀자는 하숙집을 운영하다 간첩으로 몰렸던 과거를 숨긴 채 조용히 살아가는 노인이고, 아세로라는 햇살을 피해야 하고 가공식품을 먹지 못하는 희귀병으로 세상을 떠난 동생을 떠나보내지 못하고 겉돈다. 둘은 상가 건물 2층의 등기부상 미등록 공간에서 동거하며 서로 츤데레처럼 굴다가도 의지한다. 사귀자의 지난 삶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벌어진 비극의 교집합이.. 2023. 7.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