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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진 동화집 <늙은 개>(마루비) 첫 소설집과 새 장편소설 작업을 핑계로 읽기를 미루다가 뒤늦게 펼쳤다. 책을 덮을 때 든 기분은 착잡함과 서글픔 사이의 어딘가였다. 어렸을 때 읽었던 에서 수위를 살짝 낮추고 배경을 현재로 옮기면 이런 결과물이 나오지 않을까. 문득 오래전 어머니께서 헌책방에서 사 온 의 종이 삭은 냄새가 느껴졌다. 이 동화집은 다양한 동물(혹은 인간이 아닌 무언가)의 시선으로 민담, SF 등을 차용해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들여다본다. 나는 어렸을 때 쥐가 손톱을 먹으면 나로 변한다는 말을 들은 기억 때문에, 지금도 손톱을 아무 데나 버리지 않는다.  당연히 말도 안 되는 미신이지만 말이다.  그런데 만약 내 손톱을 먹은 쥐가 나로 변했다고 치자. 나로 변한 쥐는 나를 대신해 온전히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이 복잡한.. 2024. 4. 30.
김호연 장편소설 <나의 돈키호테>(나무옆의자) 김호연 작가는 데뷔작 를 비롯해 모든 장편소설을 따라 읽었을 정도로 좋아하는 작가다. 작가의 삶을 바라보는 긍정적인 자세와 재지 않는 문장에 스며들어 있는 온기를 사랑한다. 엄청나게 유명한 작가가 된 지금이든 덜 유명했던 과거에든, 여전히 나는 작가의 신작을 손꼽아 기다리는 독자다. 이번에도 온라인 서점에서 예약 판매 중인 이 작품을 보고 바로 구매 버튼을 클릭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과거에 동네 비디오 가게에서 인연을 맺었던 소년 소녀들과 가게 주인이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어른이 된 소년 소녀들이 다시 모여 유튜브 채널을 만들고 돈키호테를 자처했던 가게 주인을 추적하는 여정을 담고 있다. 작가의 작품답게 당연히 따뜻하고 이야기는 흥미로우며 쉽게 읽히고 희망적이다. 그렇다고 작가의 메가 히트작인 .. 2024. 4. 29.
박산호 장편소설 <오늘도 조이풀하게!>(책이라는신화) 나는 2000년대 후반 맥스 브룩스의 장편소설 에서 작가의 이름을 처음 봤다. 좀비 아포칼립스 마니아여서 관련 영화와 드라마를 섭렵했는데, 작가가 변역한 는 내가 좀비물에 빠져든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이후 디스토피아를 그린 장편소설 에서도 작가의 이름을 역자로 봤다. 그 이름을 역자가 아닌 소설가로 다시 본다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그것도 화사한 표지를 가진 청소년 소설의 저자로 말이다. 다문화가정 차별을 비롯해 한부모 가정, 학원 폭력, 성소수자, 권력과 갑을 관계, 작은 사회 등 표지는 화사해도 다루는 주제가 꽤 무겁다. 이런 문제가 학교뿐만 아니라 학교 바깥에서도 벌어지는 사회 문제이기 때문에 마냥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소설로 읽히진 않는다. 곳곳에 반전과 복선이 깔려 있어 흥미진진할 뿐만 아니라.. 2024. 4. 28.
2024년 4월 5주차 추천 앨범 ▶셀린셀리셀리느 [시간의 문제] * 살짝 추천 앨범  ▶김윤아 [관능소설] ▶스트릿건즈 [Rockabilly Time] ▶백현선 [Longing] ▶다정 [Unlearn] ▶아녹 [Be Free] 2024. 4. 28.
정대건 장편소설 <급류>(민음사) 사다 놓은 지 꽤 됐는데, 이상하게 손에 잡히지 않아서 읽기를 미뤘던 작품이다. 책을 덮은 후에는 늦게 읽은 걸 후회했다. 어떤 어려움이 와도 이어질 인연은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걸 지독하면서도 섬세하게 보여주는 러브스토리다. 읽는 내내 사랑이란 과연 무엇이고, 무엇이 현실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서로를 끌리게 하며, 시간이 어떻게 사랑을 성숙하게 변화시키는지를 곱씹게 만든다.  내용과 결이 다르지만, 최진영 작가의 중편소설  속 커플이 페이지 위에 종종 겹쳐서(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비극으로 끝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스럽게도 마지막은 보다 훨씬 희망적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전개와 훌륭한 가독성(작품 제목처럼 빠르게 페이지가 넘어간다!)이 매력적이다. 누군가를 구하고자 망설임 .. 2024. 4. 28.
김하율 장편소설 <어쩌다 노산>(은행나무) 저출산을 우려하는 뉴스가 매년 늘어나고 있는데, 사실 이 문제는 기혼자와 미혼자를 나눠 판단해야 한다. 통계청의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혼인 대비 출산 비율은 1.3명이다. 2023년 합계 출산율 0.72명과 비교하면 두 배 가까이 많다. 통계로 확인할 수 있듯이 기혼자는 여전히 아이를 낳으려는 경향이 크다. 다만 만혼 비율이 매년 높아지다 보니 과거보다 난임 부부와 노산이 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 작품은 그중 노산에 관해 풀어낸 장편소설이다. 이 작품은 40대 중반의 나이에 계획하지 않았던 둘째 아이를 갖게 된 작가의 경험담을 그린다. 주인공 이름이 대놓고 작가 본명이라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자전적인 소설이다. 늦게 결혼해 난임 전문 병원에 다니며 어렵게 첫째를 가졌는.. 2024. 4. 25.
차무진 산문집 <어떤, 클래식>(공출판사) 내가 클래식에 관해 아는 수준은 소박하다.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 베토벤 교향곡 9번, 파헬벨의 카논, 비발디의 사계 등 남들이 다 아는 정도를 알 뿐이다. 그런 나도 한때 꽤 즐겨듣던 클래식이 있는데, 바로 헨델이 오라토리오 '메시아'다. '메시아'를 찾아 듣게 된 계기는 남들이 보기엔 어처구니없겠지만 영화  때문이다. 은 내가 지금까지 과장을 보태면 200번은 넘게 본 최애 영화인데, 그중에서 가장 명장면은 후반부의 총격 신이다. 주인공 두 명을 죽이려고 성당에 처들어온 악당이 성모 마리아상을 총으로 쏴서 부술 때, 절망하는 두 주인공의 클로즈업된 표정 위로 비장한 음악이 흐른다. 신시사이저가 연주하는 처연한 멜로디의 정체를 알아보니 '메시아'의 서곡 '신포니아'였다. 신이 필요한데 신을 찾을 수 .. 2024. 4. 25.
2024년 4월 4주차 추천 앨범 ▶신현필&고희안 [Dear Mozart] ▶더 폴스 [Anomalies in the oddity space] * 살짝 추천 앨범 ▶이성지 [자화상] 2024. 4. 21.
김보영 연작소설 <종의 기원담>(아작) "걸작이다..." 뒤늦게 이 작품을 읽고 든 생각이다. 문목하 작가의 장편소설 이후 오랜만에 그런 생각을 하게 한 한국 SF다. 이 작품은 지구를 지배하는 존재가 로봇인 세상을 배경으로 살아있다는 건 과연 무엇인가를 철학한다. 작품 속에서 로봇은 당연히 자신을 생물이라고 여기고, 인간의 기준으로 보면 극단적으로 오염된 환경이 로봇에겐 최적의 환경이며, 산소와 유기물질은 로봇에게 위협이 되는 오염원이다. 지금 우리가 생존 문제라고 여기는 게 과연 다른 종에게도 문제일까? 작품은 그런 세상에서 살아가는 로봇의 시선과 심리를 집요하게 쫓으며 자아와 생존을 고민한다. 지금까지 인간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세계를 모조리 뒤집어서 낯선 세상을 보여주는데, 그 세상이 낯설지 않아서 페이지를 넘기는 내내 감탄했다. 로봇.. 2024. 4. 17.